인문학이라는 숲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왼쪽부터 이승진,유수완,안수완
성공전략 및 자기개발서가 주류를 이루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철학강의서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첫 번째에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돈이 되는 학문 과학, 경제, 기술이 중시되면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은 한 때 위기를 맞았다. 사회와의 소통부재가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왔지만 최근에는 인문학이 소통의 수단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정의로우면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청소년 시기는 인문학 공부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입시위주의 공부가 아닌 양한 사회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해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바로 서현고 최고 인기 동아리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달인>''의 멤버들. 3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안수완 유수완 이승진, 세 명의 인문학 달인을 만나보았다.
인문학의 위기가 안타까운 교사와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 플라톤의 ''국가론''...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이 책들을 읽고 행간을 분석해가며 발제문을 만들고 스스로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문제의식을 매년 한편 이상의 논문으로 쓰는가 하면 시사에세이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이처럼 동아리 ''달인''에서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이나 가능한 수준의 공부가 생활화되어 있다.
"입시공부에 바쁜 학생들에게 어쩌면 인문학은 사치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학생도 많았고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입회를 원하는 모든 학생들을 받아주지 못할 만큼 인기 있는 동아리가 되었어요."
''달인''을 만들고 운영해 온 이미성 교사의 말이다. 인문학이 위기에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의기투합해 처음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수십 편의 주옥같은 논문들을 쓰면서 학생들의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교사에게는 가장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변화된 모습으로 인문학을 재해석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인문학의 힘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성숙해지고 지혜로움을 갖추게 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인간의 삶을 공부하며 찾게 된 꿈 ''인간경영 컨설턴트''
''달인''을 통해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진짜 공부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안수완 양. 단 하나의 단어 속에도 무수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인문학은 세상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보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고 안 양은 말한다.
"''미안해. 세상을 편하게 살지 못하게 해서.''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처음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많이 아는 만큼 세상일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의미였어요.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며 2천 년 전에 그가 만든 이상적인 국가의 틀이 왜 지금도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안 양은 ''2500살 민주주의의 매력''이라는 논문을 썼다. 민주주의를 비판한 플라톤의 생각을 인용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했고 그럼에도 결국 ''왜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았다.
"플라톤이 국가를 위협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해 우려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민주주의도 포퓰리즘, 방향성을 잃은 언론, 부정부패,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요.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유사이래 가장 매력적인 제도이고 최선의 제도로 잘 가꾸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양의 꿈은 이름도 낯선 ''인간경영컨설턴트''다. 생소하게 들리지만 선진국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새로운 직업이라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래에는 인간경영이 가장 부각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라고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인문학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장차 정치외교를 공부하고 싶다는 이승진 양. 중학교때까지 그냥 성적을 받기위한 피상적인 공부를 했지만 인문학에 입문하게 되면서 책읽기가 180도 바뀌었다고 이 양은 말한다.
"글씨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글씨만 읽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한 줄을 읽더라도 의미를 생각하고 읽게 되었거든요. 글을 읽으면서 저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 양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보는 습관을 갖게 되면서 사회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사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시사에세이를 쓰는 활동을 해요. 제가 다뤘던 것 중의 하나가 외국인노동자들이 근로기회 보장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기각된 문제였는데 안타까움이 컸어요. 글로벌 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약소국에 대한 배려나 관용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성적도 꽤 많이 올랐다. 다양한 영역의 수준 높은 글을 읽으면서 지문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입시공부도 결국 언어에서 시작하고 많은 글을 읽고 독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이 양은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 펼쳐내는 독립신문사 만들고파
중학교때 다독을 즐겼지만 한때 일본 연애소설류에 빠지기도 했던 평범한 학생이었던 유 양이 독립언론사 CEO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것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다. 통속소설 즐겨 읽으며 아무생각 없이 지내던 어느 날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달인''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유 양.
"숙제로 제출했던 독후감을 읽으시곤 제 생각을 바꾸고 싶으셨나 봐요. 집단이든 개인이든 옳지 않으면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마치 제가 심판자라도 되는 것처럼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세상에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과격하고 거칠었던 생각도 말투도 많이 바뀌었죠."
특히 ''이성의 역사, 광기의 역사-권력이 만들어 낸 것들에 대한 탐구''라는 논문은 권력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였어요. 저와 반대 입장에 속한 사람들의 세계도 이해하는 아량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문과학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유 양이다. 인문학의 매력에 빠지면서 과감하게 문과생의 길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과학과 수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의 하나다.
"편의에 의해 문·이과를 구분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다보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요.이번 학교 논문 탐구대회에서 ''과학과 종교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 볼 생각이에요.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지 짚어보고 이 두 이론을 서로 화합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려구요."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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