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천안의료원 허종일 원장
“돈이 없어서 질병 치료 못 받는 일은 없어야지요”
천안의료원 삼룡동 이전 … 취약계층 건강 지키는 것이 공공의료 할 일
“몸이 아픈데 왜 돈 걱정을 해야 하지? 우리는 아프면 아무 걱정 없이 치료부터 받을 수 있어.”
스페인 출신 동료의사의 말에 머리를 강한 둔기로 맞은 것처럼 멍했다. 허종일 원장(44·천안의료원 원장)이 태안의료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의 일이었다.
당시 태안주민들은 유류사고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후 생활을 위해 대부분 방제작업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몸이 아파도 작업에 참여하지 못할까봐 병원을 찾지 않았다. 큰 병이 발견될 경우 병원비 걱정도 이유였다. 이것이 안타까웠던 허 원장에게 동료의사의 말은 새로운 세계였다.
“아플 때 돈 때문에 질병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이 있어야 하고 더 늘어나야 하는 겁니다.”
지난달 16일 이전개원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허종일 원장을 만나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천안의료원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천안의료원이 봉명동에서 삼룡동으로 이전했다. 개원 후 어떤 변화가 있나
오늘이 개원 엿새째다. 이전과 개원 등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좋은 시설과 의료진, 기기 등을 갖추어 찾는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람들의 평가도 좋다.
의료기관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숙제다. 그동안 의료원은 공익적인 역할을 중요시해서 전문적인 수요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도 컸다. 하지만 사회취약계층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곳이다.
물론, 기본적인 역할을 잊지 않는다. 천안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공익적인 의료행위를 한다. 병원에서 공익이라 함은 모든 사람에게 문턱을 낮추고 적정진료를 하는 것이다.
-. 공공의료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이 사회에 왜 필요하다고 보나
의료는 공익적인 부분이다. 의식주와 똑같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질병, 전염병 예방은 공공의 요소에 속하지 않나. 서유럽 등 복지제도 잘 되어 있는 곳은 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은 의료산업화로 돈을 벌지 못하는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있다. 민간에서 기피하는 진료과 등을 공공의료기관이 맡아야 한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의료원의 적자가 늘 지적받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가장 큰 원인은 보건의료수가제도이다. 갈수록 비급여가 늘면서 건강보험 적용 비율이 낮아진다. 지난해 의료소비가 46조2000억원 정도로 10년 동안 2.5배 늘었다. 과연 질병이 그렇게 많아진 걸까. 의료 환경이 좋아져 질병의 조기발견이 많아지고 고령자로 인해 만성질환이 늘어난 결과다. 국민 눈높이가 올라가 의료행위에 투자가 늘어난 이유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의료원은 어려운 사람들의 동아줄이다. 천안의료원은 봉명동 시절 120병상 중 46%가 의료보호 1종 환자였다. 행려 노숙 보훈유공자까지 합하면 50%를 훌쩍 넘었다. 이 사람들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돈이 없다고 아픈 사람을 나가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경영 압박을 받는다 하더라도 수익 내는 의료행위를 우선 할 수 없다.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 공공의료기관에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34개 지역의료원 중 흑자 내는 곳은 4~5개 정도다. 병원 의업 수익만으로는 다 적자다. 상황이 이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료기관을 전체 30%까지 확대하겠다’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며 정책적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 4조5000억 정도의 비용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국가가 설립하되 운영은 지자체가 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접근이 부족해 좋은 계획이 사라졌다.
국가가 나서 공공의료기관을 갖추고 지원해야 한다. 서유럽은 일부 민간의료기관 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국민이 의료비 걱정을 안 한다. 자유방임형 의료제도를 표방하는 미국마저도 공공의료기관 30%를 갖추었다.
-. 재정 적자는 앞으로도 천안의료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타개책은 있나
천안의료원 원장으로 취임하고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다. 1962년 천안병원으로 개원, 지금의 천안의료원이 있다. 당시는 다른 대형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운영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50년 동안 인근에 대학병원 전문병원이 생기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시설투자도 어려워 건물은 비가 새고 장비를 들이고 싶어도 공간이 없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좋은 의료진을 모시고 싶어도 장비나 시설을 보고 안 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전하면서 시설과 의료기기를 갖추고 좋은 의료진도 충원했다. 진료 영역도 많이 넓어졌다. 진료를 받으면 다른 병원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적정진료를 위해 노력하여 입원 진료비가 민간병원 70% 수준이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천안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삼룡동은 지리적으로 천안의 중심인데 동부 6개면은 전문의료원이나 병원이 없는 의료소외지역이다. 천안의료원은 입원치료나 급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동부 지역 5만4000~5만5000명의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 되려고 한다.
또한 주민참여위원회를 만들어 의견을 청취하고, 대회의실 공간은 마을회의나 행사 때 지역민들을 위해 개방,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천안의료원은 모든 사람들이 병원비 걱정 하지 않고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에 디딤돌이 되고 싶다.
선입견을 버리고 천안의료원을 받아들이기를 부탁드린다. 지역사회에 보탬 되는 일을 다른 의료기관보다는 많이 하는 천안의료원에 애정을 갖고 질책과 격려를 함께 해주면 좋겠다.
문의 : 041-570-7000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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