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실태 조사, 난 이렇게 생각한다
“성적지상주의가 학교 폭력 근본 원인”
인성교육과 운동 예술 활동 통한 여유 길러줘야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 공개를 둘러싸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 실태 조사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학교폭력의 기준이 애매모호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기도 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 보다 처벌 위주의 즉각적이고 단선적이다, 학생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학교폭력과 실태 조사를 둘러싼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사 전 적극적인 홍보와 익명성 보장돼야
얼마 전 신문을 보다 ‘학교폭력 실태조사’ 기사를 본 여민정(43·재송동) 씨는 황당했다고 한다. 올 초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라는데 아이들 일이나 학교 일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꿰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러한 조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에서다.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학교폭력에 관한 문제라면 학부모가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 아닌가요? 초 5학년인 딸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자신도 그런 조사가 있었는지도 모르더라구요”
이번 조사가 적극적인 홍보 미흡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응답이 나오지 못했다는 여씨의 지적이다. 또한 여씨는 “주변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학교폭력 신고사례를 보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며 “학교폭력의 기준도 애매모호해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연하다”고 하소연한다.
한편 여씨는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을 보면 더욱 걱정이란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70%가 중학교에서 일어났다는 점 때문이다.
여씨는 학교폭력의 원인을 무엇보다 요즘 아이들이 학업적 스트레스를 풀 거리가 없다는 것과 가정에서 배려심을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는 가족이기주의도 지적한다.
학생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근본적인 원인 찾아야
“학교폭력 실태에 대해 조사가 있었던 건 기억하지만 저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어 관심이 없었어요”
중학교 2학년 김 모군의 말이다. 올해부터 중 2학년에는 담임교사가 2명이 배치될 정도로 탈도 많은, 소위 ‘무서운 중딩’이라 불리는 중학생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학교나 학원, 집에서까지 ‘공부’라는 소리에 시달리다보니 사실 친구사이도 경쟁관계가 되어 버렸어요. 방과 후에는 거의 대부분 학원가기 바쁘다보니 마음놓고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구요. 그래서인지 마음 터놓을 단짝 친구 찾기가 힘들어요.”
김 군은 사회가 학교폭력 학생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그 뒷면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줄 것을 당부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이나 상담실을 마련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비춰져 학생들에게 호응을 많이 얻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계획 중인 ‘또래상담사업’에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어요. 부산의 한 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안전·드림지킴이 인증서’ 교육과 친구와 고민나누기가 활성화 되어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해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참을 줄 아는 인내심 가져야
초등학교 6년생 김현지양은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내심과 배려심을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험이 끝나고 경찰아저씨께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강의를 했어요.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이유 중 대부분이 심심해서, 그 아이가 기분 나쁘게 행동해서, 더러워서 등 사소한 것들이란 게 충격적이었어요. 친구한테 들었는데 어떤 중학교에서는 자신과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왕따를 시켰다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면 좋을 것 같아요. 친구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욕부터 나가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대화로 해결하고,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친구의 몰랐던 장점도 발견하고 학교폭력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가는 딸 걱정 돼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강주영(45·가명)씨는 최근 학교 폭력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 해 기대를 많이 했던 딸이 중학교에 가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더군요.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딸도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기 싫어했어요. 하지만 2학년이 된 지금도 딸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어요.”
딸아이 학교 조사결과가 다른 학교에 비해 높게 나온 것이 강씨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여러 면에서 신뢰할 수 없는 조사라고 해도 자신의 딸이 피해자일수도, 아니 어쩜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만약 딸이 이 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는 강씨.
“얼마 전 딸아이가 예전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순진하게 웃는 딸을 보며 세상이 이 아이를 규정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늘 두렵습니다.”
최근 강씨는 전학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를 부각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냐
초등학교 4학년 김지민양은 학교폭력관련 조사 이야기를 듣고 첫마디가 “그게 뭐죠?”라고 했다. 아직 학교폭력이나 일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순진한 아이다. 하지만 김양의 학교는 주변 학교에 비해 조금 높은 결과가 나왔다. 학교폭력과 일진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양은 “우리 학교엔 그런 거 없어요”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를 이야기 하자 “난 정말 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하며 의아해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김양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도리어 학교를 조금 무섭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학교에 비해 자신의 학교가 높은 것을 막연하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반응이었다. 김양의 어머니 박희정(40)씨는 이런 예민한 결과를 학교별로 나열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었다.
“아이의 반응을 보면 학교 폭력 실태 조사 결과가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어쨌든 학교를 믿고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학부모로선 갑갑한 결과네요. 아이가 도리어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할까 걱정도 됩니다.”
박씨는 자라는 아이들의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동과 예술 활동을 통해 여유 가져야
“학교폭력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요. 오죽하면 그 어린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어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 되어버린 거죠.”
요즘 들어 신문보기가 겁이 난다는 최미선(남천동·42)씨 말이다.
문제 발생 시 발빠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예방이 급선무라는 최씨는 성적을 강요하는 요즘 교육이 학교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단다. “사람마다 특기는 다 달라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공부에 특기가 있는 거죠. 그런데 누구에게나 일류 대학을 강요하니 엇나갈 수밖에요.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다보니 결국 주변의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충분히 뛰어 놀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아이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숙해져 갈 것이라는 최씨. “운동이나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에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여유”라며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 사회가 힘을 합쳐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부경·김영희·이수정 lagoon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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