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외고의 스타쌤 김동근 교사. 국어와 생물과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문이과 통섭’을 실천한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우리 학교에는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한 스타 선생님들이 참 많아요. 그 가운데 김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톱스타지요.” 김종인 한영외고 교감이 웃으며 추천사를 덧붙인다.
김 교사가 학생들을 부를 때마다 쓰는 호칭이 독특하다. ‘너희들’ ‘야 임마’ 같은 반말 투 대신 2인칭 대명사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존칭어 ‘그대’라는 말로 학생들을 부른다. “처음엔 손발이 오글거린다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적응했어요(웃음). 교사와 학생이 상하관계가 아니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고 있는 셈이죠.”
음악과 사진이 있는 국어수업
그가 가르치고 있는 과목은 문학.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을 공부할 때는 이루마의 음악 ‘River flows in you''를 배경음악으로 깔아 무드를 조성한 뒤 낭송시킨다. 두보의 한시 ‘강촌’을 배울 때는 경북 예천의 회룡포 사진을 앞에 띄워 놓고 시인이 노래한 풍광과 정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구절구절을 음미해 보도록 한다. 글 위주가 아닌 시각, 청각 등 오감을 활용한 국어 수업을 선보이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쪼개고 분석하며 달달 외우기 전에 작품을 오롯이 가슴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시험 도사’인 제자들에게 성적도 중요하지만 ‘감성’도 인간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가르치고자 애쓴다. “신학기 때 학생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수업 스타일, 자신이 바라는 국어교수법, 건의사항을 가감 없이 적어내라 해요. 아이들은 일방적 지식 전달이 아닌 소통하고 참여하는 수업을 많이 요구해요. 이런 점을 최대한 반영해서 수업을 설계하죠.”
올해 31살 총각 선생님. 제자들과 나이차가 14살 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코드’가 잘 맞는다. 주말마다 ‘개그콘서트’를 애청하며 수업에 패러디하고 돌발 퀴즈, 허를 찌르는 질문들을 던져 학생들을 수업 내내 긴장시키고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보니 핵심파악 능력, 수업 집중도 같은 교실 분위기는 일품이지요. 나 스스로도 수업을 즐기고 있어요.”
‘10년 대학생’이 경험한 세상
제주도 출신 김 교사는 학창시절 내내 공부만 파는 ‘범생이’였다. 성격이 밝아 친구도 많았지만 보스 기질은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 생물교육학과에 입학한 뒤로 성격이 180도 바뀐다. “시골 출신인 내게 서울의 모든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모든 걸 다 흡수하고 싶었어요. 우연히 신입생 과대표를 맡은 뒤로 꽁꽁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김동근’이 드러나기 시작했지요.” 그는 군복무 기간을 포함, 대학을 10년간이나 다녔다. 신입생 시절 일찌감치 장래 직업을 ‘선생님’으로 낙점해 놓고 원 없이 세상 공부에 나섰기 때문이다.
“강연회에서 만난 신영복 선생께서 ‘대학 시절은 그릇을 채우는 시기가 아닌 그릇을 키우는 시간’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꽂혔죠. 원래 ‘사람’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촌로, 시장통 상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러 다녔어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무전여행을 떠나고 석학들의 강연을 쫓아다녔다.
특히 당진, 정읍, 군산 등지로 다닌 농촌봉사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온몸이 바스러지게 일해 1년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하는 주름진 농부들의 넋두리가 가슴 아팠어요. 내가 직접 농사일을 거들어 보니까 일이 고되다는 걸 절절히 느꼈죠.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이 애쓴다며 식사까지 살뜰히 챙겨주시는 시골 인심이 참 따뜻했어요.”
‘멋진 제자’ 키우고 싶은 욕심
그는 전공인 생물학에 큰 흥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고 기형도 시인을 동경했던 그는 국어교육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마음먹는다. “생물이라는 학문을 재밌게 가르치는 데 나 스스로 한계를 느꼈어요. 반면에 국어는 학생들과 소통하며 사고의 폭을 키워나가는 매력이 있지요.”
대학시절 내내 꿈꾸던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선 ‘현재’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 교사. ‘10년간 대학생’으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원 없이 해보았던 경험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엽낙분본(葉落糞本 낙엽이 떨어지면 나무뿌리에 거름이 된다). 그가 늘 가슴 속에 새기는 경구다. “석학부터 시골 촌로까지 내가 다양하게 경험한 ‘사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려 애쓰고 있어요. 가르치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겠죠. 공부 도사보다는 ‘머리와 가슴’이 조화를 이루는 제자를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김 교사. 교재 준비, 수업 준비로 바쁜 틈틈이 습작을 하며 ‘시인 등단’이라는 또 다른 꿈을 향해서도 치열하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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