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을 앞둔 제자가 찾아왔다. 최보규 교사가 12년 전 고1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영특하고 심지가 곧은 아이였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을까 늘 마음이 쓰였어요.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렵게 공부한 나의 고교시절이 오버랩 되더군요. 자주 불러 내 경험담을 들려주며 다독였지요.” 연세대에 입학한 제자는 ‘순수 학문에 관심을 두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겼고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반듯하게 제 길 가는 제자들이 교직생활의 비타민
최 교사에게는 이처럼 졸업한 뒤에도 수시로 문자메시지 보내고 불쑥 찾아오는 제자들이 많다. “이런 제자들의 한마디가 내겐 비타민입니다. 얼마 전엔 내 말에 용기를 얻어 대학을 휴학하고,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며 외무고시를 준비한 제자가 1차에 합격했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제자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교직 경력 28년차의 최 교사는 흐트러짐이 없다. 3학년 부장으로 진로지도부장까지 겸하고 있는 그는 10년 연속 고3 담임을 맡고 있다. 아침 6시55분 출근, 10시 퇴근. 단조로운 일상은 늘 변함이 없다. 유일한 취미는 등산. 2주에 한 번씩 산을 오르는데 태백산, 소백산 등 손꼽히는 국내 명산을 두루 섭렵했다.
‘선생이란 직업인은 누구보다 성실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그는 쉬는 시간 틈틈이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을 찾아 학생들을 챙긴다. 그는 수십 년간 단련된 ‘촉’을 세워 학생들을 관찰한다. “이 아이는 슬럼프구나 얼굴만 봐도 바로 감이 와요. 그럴 땐 진정성을 담아 말을 건네거나 살짝 불러 고민을 들어주면서 용기를 주죠.”
수학선생님이 된 계기가 궁금했다. 전북 익산 남성고 시절의 최보규는 인생 최고의 시련을 만난다. 고1 무렵 아버지와 형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예민한 사춘기에 피붙이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사랑하라’는 나름의 인생살이 진리를이 때 터득했다. 고2 때 만난 김중수 담임선생님은 그의 진로에 나침반이 되었다. “저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 있구나라는 감탄, 저 선생님만 잘 따르면 뭐든 되겠다는 무한 신뢰감이 생겼어요. 자연스럽게 그 분을 롤 모델 삼아 나 역시 교사가 되었지요.”
첫 부임지는 대원고. 그 뒤 대원외고로 자리를 옮겼다. “경력 4년차 정도 되면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은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 해요. 입시는 정해진 틀이 있고 그 안에서 패턴이 변형될 뿐이죠. 나 역시 모든 문제집을 독파하며 나만의 교수법을 만들었죠.” <1등급 수학>을 비롯해 직접 쓴 교재와 감수한 문제집도 여러 권이다. 특히 수학은 ‘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도 늘 문제를 푼다.
고3 담임 연속 10년 맡으며 쌓은 진학 지도 노하우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는 학생들을 보면 보람이 크죠. 교사로서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대원외고 교사로서 자긍심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물론 고충도 있다. “중학교 때까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이들이 입학 후 성적 때문에 좌절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럴 때마다 아이를 붙잡고 ‘사람은 빨리 될 수도 늦게 될 수도 있다. 한번 해보라’라며 다독인다.
대원외고의 진학률은 늘 민감한 이슈다. 3학년 부장으로 10년째 입시 최전선에 서 있는 그에게 진학지도 노하우를 캐묻자 손사래를 치며 ‘교사들 간의 팀워크’를 첫손으로 꼽는다. “SKY대 진학률은 우리 학교가 국내 최고지요. 합격생수가 많은데다 20년간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산 관리해 수능점수 대비 최초 합격부터 4차 추가 합격까지 대학별, 과별로 DB가 탄탄해요. 이를 토대로 진학지도를 하지요.” 9명의 진학담당 교사가 개별적으로 분석한 입시자료를 토대로 ‘끝장 토론’을 거쳐 종합적인 입시전략을 함께 세운다. “입시제도가 바뀌기 바로 직전은 ‘하향 안전 지원’이 대세지요. 때문에 입시용어로 ‘뚫리는 과’가 꼭 생겨요. 이땐 진학교사의 노하우와 감이 중요하죠. 재수를 각오할 수 있는 배짱 있는 학생에겐 상향지원을 권유해요. 성공 케이스도 꽤 있어요.”
“공부로 사회 공헌 하라” 학생들에게 강조
대입원서를 쓸 때마다 그는 학생들에게 순수 학문에 관심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전문직에 계신 부모님, 좋은 교육 환경... 상당수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자랐어요. 때문에 고위공무원, CEO를 꿈꾸는 것도 좋지만 학문을 연구하는 데 20대 열정을 쏟으라고 해요. 공부로 사회공헌을 하라는 셈이죠.”그의 충고대로 학자의 길을 우직하게 걷고 있는 제자들도 여럿 있다.
인터뷰 내내 최 교사는 ‘열정’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이곳은 나의 첫 직장이고 아마 마지막도 여기가 될 겁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이 퇴임 때까지 변함없기를 늘 기도합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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