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학부모 총회 날이 되면 초·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집니다. 녹색어머니회, 명예사서, 급식검수, 시험감독 등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총회에 참여하는 학부모가 많은 초등학교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 갈수록 인원이 적어져 참가자 모두가 ‘임원’이 되는 일도 허다합니다.
참가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치맛바람 일으킨다는 오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학교는 자녀가 다니는 곳이지 엄마가 다니는 곳은 아니라는 말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모두가 예민해 하면서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학부모 활동. 어디까지 참여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이, 학부모, 교사가 모두 웃는 학부모 활동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요? 자녀 학교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 온 학부모들을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양지연 이향지 리포터
시험감독 활동하는 김진선(안곡중·고 학부모)씨
“학교생활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김진선 씨는 시험 기간에 자녀의 학교로 출근한 지 2년째가 되어 간다. 학부모 시험감독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정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활동에 참여한 일이 거의 없었다. 운동회, 총회, 심지어 녹색어머니도 모두 남편이 도맡아 했다.
“학교는 아이 혼자 다니는 거라 생각했어요. 학교에 가면 선생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거라고요.”
그런 그가 달라진 것은 큰 아이의 중학교 생활을 지켜본 이후부터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에게 내가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필요를 느꼈다. 김 씨는 지난해 학부모 총회에서 명예교사 활동을 지원했다. 학부모 명예교사는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참관하며 감독 활동을 돕는다. 학기 초 총회 자리에서 참가자를 모집할 때 지원하면 된다.
학부모 시험 감독은 중간과 기말고사를 볼 때 교실 뒤편에 서서 학생들을 지켜보고 답안지 교체하는 일을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활동한 후 집에 오면 다리가 퉁퉁 부어있다. 긴장감 때문이다. 시험 감독의 특성상 의자에 앉아있을 수도 없다. 아는 아이가 있어도 아는 척 하거나 말을 걸면 안 된다. 부정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발도 옆으로 한 걸음씩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시끄러운 소리에 예민해질 수 있는 시험기간, 시험감독 하러 왔다가 누군가의 시험을 망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이 다 힘들어 하는구나’ 깨달아
시험 시작이 되자마자 일분 만에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했을 노력들이 아깝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서있기만 하니 힘들어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잠자는 애들을 깨워줄 수도 없고.”
힘들지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다른 엄마들을 쉬는 시간을 이용해 만나기도 하고, 선생님과 짧은 상담을 하기도 한다.
“조그만 일이지만 학교에 엄마가 가는 것이 많은 역할을 해요. 중학교에 가면 다 커서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애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건 중고등학교 때더라고요.”
학교 활동에 참여하면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애만 힘든 게 아니고 모든 애들이 다 똑같이 힘들겠다는 통찰도 생긴다. ‘우리 엄마가 학교에 왔다’는 사실 하나로 뿌듯해 하는 아이의 모습에 김진선 씨는 기꺼이 시험 감독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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