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분만연구회 회장, 동원산부인과 김상현 원장 인터뷰

"출산문화의 혁명을 가져온 인권분만 시행 10년, 아기는 평화롭게 태어난다"

지역내일 2012-05-28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나라 출산문화의 변화를 실감했다. 낯설고 불편했던 공간, 누워있고 싶어도 누워있기 힘든 진통이 찾아왔지만 결국 침대에 누워 첫 아이를 낳았다. 당시 분만실은 꼭 남의 집에 누워 아기를 낳은 것처럼 불편했다. 둘째 아이는 르봐이예 분만으로 출산했다. 분만실에는 병원용 침대 대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분만베드가 놓여 있었고, 남편과 함께한 분만실은 오로지 우리 가족을 위한 공간이었다. 출산문화의 결정적인 변화를 실감했던 건 출산 직후다. 아기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울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고단했던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힘겨운 진통을 견뎌준 아기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렇게 둘째를 낳으며 나는 르봐이예 분만 예찬자가 됐다. 국내에 르봐이예 분만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바로 동원산부인과 김상현 원장이다. 그는 2000년 1월 르봐이예 분만을 처음 세상에 알린 후 인권분만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며 우리나라 분만문화를 바꾸는데 주력해 왔다. 인권분만연구회 회장이기도 한 김상현 원장을 일산내일신문에서 만나 보았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 최근 르봐이예 분만의 교과서로 알려진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의 ''폭력없는 탄생''이 재출간되면서 임산부들 사이에 필독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인 ''폭력없는 탄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분만을 태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산도를 빠져나오면서 아기는 폭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기에게 큰 스트레스이자 힘겨운 일인데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더 힘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눈부신 조명에, 시끄러운 소리, 거꾸로 세워지거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아기를 울게 만드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힘들게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생각지 못했던 폭력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르봐이예 분만은 산모와 태어나는 아기의 인권을 함께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인권분만이라고 합니다. 출산시 아기가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함으로써 태아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것이 인권분만의 철학입니다.


■ 그렇다면 인권분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요?
아기가 태어날 때 분만실을 어두운 조명과 조용한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빛과 소음으로 인한 아기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아기는 출산직후 엄마의 가슴에 안겨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취합니다. 탯줄은 분만 5분후에 자릅니다. 태아의 호흡이 탯줄 호흡에서 폐호흡으로 바뀌는 과정을 기다려줍니다. 탯줄을 자른 후에는 분만실에 마련된 아기 욕조에 잠시 머물며 중력에 적응하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분만 후 1시간 이내에 엄마젖을 빨게 해주는 것이 인권분만(르봐이예 분만) 과정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일반분만에 비해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자연스러운 분만과정을 최대한 기다려주고, 아이가 나온 후에도 분만실에서 엄마와 1시간 정도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권분만을 한다고 해서 비용을 더 받지는 않습니다.


■ 인권분만은 아기와 산모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분만시 산모의 진통을 줄여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산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그네분만이나 좌식분만 등 원하는 자세로 출산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통시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평소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며 진통을 완화할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갖도록 해줍니다. 산모에게 고통과 두려움으로 얼룩진 분만이 아니라 아기와 처음 만나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모든 의료진이 노력을 기울입니다. 1970년대 르봐이예 분만이 세상에 알려진 후 1980년대 이후로 이에 관한 다양한 논문들이 발표됐습니다. 르봐이예 분만은 모유수유와 아기의 감성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권분만 시행 10년이 넘으면서 이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이 모아애착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 인권분만은 인위적인 의료개입 보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해 임산부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임신기간 중 안정기에 접어들면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신 중에는 과체중이 되기 쉬운데 과체중이 되면 진통이 잘 안 옵니다. 따라서 체중조절을 잘하기 위해서나 분만을 촉진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은 과격한 운동보다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걷기를 추천합니다. 분만이 임박한 막달에는 오래 걷기로 자궁문을 자극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유방마사지를 하면 자궁수축 호르몬이 분비돼 자연스러운 분만에 도움이 됩니다.


■ 국내 처음 르봐이예 분만을 시행했고, 인권분만 연구회를 통해 우리나라 출산문화를 바꾸는데 공헌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2001년 처음 르봐이예 분만을 시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르봐이예 분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애를 쓰지요. 그러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분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최초 르봐이예 분만 도입이라는 명예를 안고 있는 만큼, 인권분만 철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기울일 것입니다.


■ 인권분만 연구회는?
인권분만 연구회는 권위적인 의사중심의 출산문화가 아니라 산모와 태아의 인권을 존중하는 출산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의사들의 모임에서 출발했다. 회원 병원은 르봐이예 분만 철학을 100% 반영한 출산환경을 제공하며, 출산뿐 아니라 태교부터 육아까지 아기의 탄생과 성장을 돕는 교육을 지원한다. 또한 인권분만 연구회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한 다양한 분만법을 지원한다. 다양한 분만법은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좌식분만을 기본으로 산모가 좀 더 수월하게 출산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인권분만 연구회원들은 인생의 첫출발을 울음이 아닌 웃음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태아와 산모 중심의 분만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권분만 연구회 www.humandeliv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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