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날은 갔다. 그대로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황금기는 다시 찾아온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아름다운행궁길은 이런 인생을 닮았다. 70~80년대 성안의 중심지로 북적대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좁고 허름한 별 볼일 없는 골목길로 취급받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감 있는 거리가 됐다. 공방, 맛촌이 어우러져 수원의 ‘인사동’으로 불린다.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노쇠한 거리를 보듬으며 함께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행궁길 곳곳에 사랑으로 피어있었다.
없는 게 없는 행궁길 마실 다니기
#1. ‘나녕공방’엔 없는 게 없었다. 칠보, 도자기, 닥종이, 북아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공예품들이 공방 안을 가득 메웠다. “행궁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공방”이라며 웃어 보이는 김난영 작가. 그는 우리나라의 회화칠보 1인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인사동에도 없는 칠보공예품 덕분에 마니아들이 생길 정도라고. 칠보와 매듭공예를 활용한 캐릭터폰이 시선을 붙잡는다.
#2. ‘나무아저씨’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나무냄새가 전해져온다. 자연 그대로 생긴 나무판 위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은 서각공예작품이 색다른 볼거리다. 여백의 미를 살린 멋스러운 배치며, 운치가 작은 여유를 가져다준다. ‘주인만 빼고 판매한다’는 문구가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든다.
#3. ‘핑크리본 케이크’를 보는 순간 ‘와우~!’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설탕이 주재료라 식용도 가능하고, 오랫동안 보관도 가능하다”고 유선아 작가가 말한다. 화려한 색감을 가진데다가 클레이처럼 말랑말랑한 재료를 주물러 케이크, 머핀을 맘대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우리 아이에게 꼭 체험시켜주고픈 아이템이다. 달콤한 냄새에 살짝 허기가 돈다.
#4. ‘엄마생각’에서 잠시 쉼표. 커피향이 그윽하게 흐른다. 돈가스, 라면이 주 메뉴지만, 엄마를 닮은 주인장의 커피 맛이 참 좋다. 주말 가족손님들을 위해 준비했다던 동요가 때아니게 또랑또랑 흘러나온다. 창밖의 행궁길 풍경에 추억이 그냥 그대로 덧입혀졌다.
잊혀진 행궁길, 체험행사로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다~
한국적인 미와 개성으로 똘똘 뭉친 간판, 잘 정돈된 보도블록, 거리에 일렬로 늘어선 용광로 모양 알록달록 화분, 행궁길의 설레는 첫인상을 늘어놓자 김난영 아름다운행궁길 사무국장은 “처음 여기 왔을 땐 셔터가 내려진 건물이 대부분이었을 만큼 상가가 다 죽어있었다”고 행궁길의 모습을 회고한다. ‘곧 테마거리로 만들어질 거라’는 박영환 회장의 꼬드김에 이곳을 찾긴 했지만, 2~3년은 고생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담국시방 김영수 칠보공예작가가 김 사무국장을 따라왔고, 알음알음 작가들이 행궁길로 입주했다. 저렴한 비용의 고즈넉한 창작공간과 함께 공방거리에 대한 꿈을 펼치고픈 마음이 이렇게 15명의 공방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박영환 회장의 얘기가 이어진다.
“없는 돈, 있는 돈 탈탈 털어가며 자기비용으로 체험행사를 진행했어요. 창작할 시간도 반납한 채, 인터넷 카페에서 자체 홍보도 해가면서 말이죠.” 한 6개월쯤 지났을까, 이들을 꾸준히 지켜보던 수원시가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이들의 노력은 쇼핑타운 테마거리를 염두에 뒀던 시의 계획을 ‘공방거리’로 궤도수정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작가+주민+수원시’의 공조와 협조 아래 아름다운행궁길은 비로소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간판, 아름다운행궁길의 지금이 변질되지 않아야
테마거리가 조성되는 중에도 작가들의 고군분투는 이어졌다. 간판에 드는 자부담을 최소화하려고 직접 외벽에 간판을 다는 등 겨우내 몸으로 때우기도 했다. 2~3개월에 걸쳐 자신의 공방에 어울리는 간판도 디자인했다. 제 맛을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재료를 사용하기도 여러 번, 지금의 아름다운행궁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간판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예술작품 같은 간판은 2011년 행정안전부 옥외광고평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그리고 요즘 이 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아름다운거리를 담으려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면 ‘요즘 너무 행복하다’는 김 사무국장은 “우리만의 모토가 있다. 중국산은 절대 팔지 말자, 작가들의 수공예 작품만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는 거리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17개의 공방과 42개의 맛촌, 아름다운행궁길을 지금 이대로 지켜나가는 일은 사실 이들의 또 다른 숙제다.
“행궁 상권이 활성화되면 외부상인들의 유입이 생길 수가 있거든요. 아름다운행궁길의 본질을 거스르지 않는 주변조성과 작가들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게 주민들의 지속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박영환 회장은 공방사람들이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와 맞서 갖은 고생 해가며, 행궁광장 눈썰매장 운영을 자발적으로 맡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 아름다운행궁길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아름다운행궁길 한마당 축제를 앞두고 요즘 공방사람들은 분주하다. 개인 작품전 준비까지 눈코 뜰 새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박 회장의 얘기다.
“골목은 엄마의 젖줄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행궁길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한 엄마의 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행궁길에 머무는 발길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겠죠.(웃음)”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아름다운행궁길 한마당축제
아름다운행궁길은 팔달문~화성행궁까지 연결된 420m의 거리로 42개의 맛촌과 압화, 은공예, 칠보, 솟대, 한지, 매듭, 비즈 등 17개의 공방이 늘어서 있다. 간판 뿐만 아니라 보도블록과 벽면에 그린 그림들도 이색볼거리다.
▷한마당축제-4월28일(3~10월 넷째 주 토요일 열림) 오전11시~오후4시
: 그룹 티삼스 공연, 외부작가들 30~40명 합류?공방별 체험프로그램 운영, 전통놀이, 시낭송 등 이벤트 진행/ 체험비는 5000원~1만원 선
▷예술마당 갤러리-5월 중 공방상품 전시 및 판매 예정(도자기, 한지, 솟대, 컵받침대 등)
: 외부작가들에게 1일 1만원에 대여도 가능
문의 031-252-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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