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2012 장애인상 수상 삼보교회 ‘박창윤 목사’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낸 도전과 성공

지역내일 2012-05-13

갑자기 당한 사고로 장애를 입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32년 동안 희망의 메시지로 절망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삼보교회 박창윤 목사(66세). ‘올해의 장애인 상’을 수상한 그의 이야기를 통해 눈물겨웠던 도전과 성공,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19세 청년의 꿈을 날려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꿈 많던 19세 박창윤씨는 8명의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다 손바닥 만 한 쇠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친구가 그것을 집어 들어 창윤씨에게 던졌고 그만 터져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두 눈과 두 손을 잃게 된 창윤씨. 법관을 꿈꾸던 그의 미래가 하루아침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조개잡이로 네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홀어머니에게 짐이 될 것 같아 죽고 싶었던 그는 절망과 좌절로 자살 기도와 실패를 반복했다. 두 눈과 두 손이 없는 상황에서 자살도 쉽지 않았던 그는 “살아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그래 이제 살아보자. 손은 잘려나갔지만 눈은 노력하면 볼 수 있지 않을까?”고 가끔씩 희미하게 보이는 눈에 희망을 가졌다.
그 날부터 매일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계 인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편지로 알리기 시작했다. 동생들이 받아 적어 보낸 집요한 편지에 서울시장으로부터 영등포시립병원과 적십자병원에 가보라는 회신이 왔다. 희망은 잠깐뿐, 그 때 받은 인공각막 수술이 그의 시력을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절망에 사로 잡혀 있던 그를 옆집 학생이 집 근처 교회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그동안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들과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된 창윤씨. 오히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맘먹고 이빨로 종 줄을 잡아당겨 새벽종을 치게 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6개월간 계속된 새벽 종소리로 그는 마을에서 유명해졌다.


믿음의 어머니, 선생님 그리고 아내
조개잡이로 가족을 부양하던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납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TV를 통해 그 일이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모 일간지 기자가 납북자 가족의 취재차 강화도를 방문했다가 창윤씨의 사연을 전하게 되었다.
신문을 통해 창윤씨의 사정을 접하게 된 새문안교회 양순화씨(90세)가 그의 의수를 제작해 주었고 서울시가 맹인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한 대린원이라는 교육기관에 입학시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보낸 1년이 신학교 진학을 결심한 계기가 되어 광화문 피어선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양씨를 믿음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가 목사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데 기초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 양씨라면, 영락교회의 한경직  원로목사와 한국성서대학의 학장인 강태욱 박사는 그의 꿈이 실현되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준 스승이다. 한 목사가 소개한 지인으로부터 교회 건축을 위해 10억 원이라는 큰돈을 지원받았고, 지금의 삼보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 박 목사는 “강 박사가 67세 때 나를 위해 자신의 눈을 내 놓겠다고 할 정도로 많이 사랑해 주신 분이다”고 회상한다.
박 목사의 삶에서 아내 최미숙씨(58)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최씨를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단아한 외모에 명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던 그녀가 두 눈과 두 손이 없는 박 목사와 결혼 한 것은 기적과 다름이 없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23세의 꽃다운 나이였던 그녀가 당시 31세 노총각이던 박 목사를 만나 결혼하기 까지 집안의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그를 향해 있었기에 그와 결혼할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박 목사와 함께한 그녀의 삶이 평탄할리 없었지만 묵묵히 35년 간 그의 눈과 손이 되어 주었다.
박 목사는 피어선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성서 신학대학을 거쳐 목사가 되었다. 그 후 총회신학대학과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워싱턴 침례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성서에 나타난 다섯 날의 고찰’은 미국 뉴욕 타임즈에 기사화되었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박 목사는 80년에 목 2동에 삼보교회를 설립했고, 90년에 목3동에 교회를 신축해 1000여명의 신도들과 삶을 나누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뛰어 넘어 세상으로
박 목사는 1970년부터 양천 경찰서, 서대문과 마포구치소를 오가며 수감된 죄수들과 윤락 여성들을 위해 일했다. “이런 몸을 가진 나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나보다 나은 환경에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지금까지 261명의 살인자와 교류하면 그 들의 변화를 이끌었다. 당시 유명했던 살인사건의 주범 박철웅, 주영형도 그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30여 개국의 집회에서 설교를 했으며, 파충류의 배설물로 오염된 물을 먹고 병에 걸려 고생하던 아마존 인디오 마을에 5개의 우물을 파고 교회를 지어주는 등 그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 졌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하지 않았을까?
국제 군 선교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군 선교 중에 한 젊은이가 “자살하려고 했는데 두 눈과 두 손이 없는 목사님이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했을 때, “나의 부족한 부분으로 인해 그들의 생각이 변화되고 삶이 바뀐 것을 보고 더욱 힘을 내었다”고 회상한다.
자신보다 더 힘든 장애인들을 돌보리라는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2008년 경기도 김포시에 장애인 생활시설인 ‘예지원’을 개원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에 현재 지체, 뇌병변 장애인들이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조리사 등의 간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장애인 자립을 위한 보호 작업장 설립과 치매노인 병동, 은퇴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실버타운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사회복지학(석사)을 다시 공부한 그는 경기도에 기독인 전용 추모공원 ‘삼보 크리스천 메모리얼 파크’도 건립해 분양 중에 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실버타운 건립과 선교비 지원에 사용할 예정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소외된 이웃의 복지 향상을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족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켜 성공한 박창윤 목사. 그가 살고자 했을 때 길이 열렸던 것처럼 포기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성명욱 리포터 tim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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