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완연한 4월의 어느 휴일, 게으름을 피우며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우며 부산을 떠는 엄마. 일주일동안 학교 다니랴 학원 쫓아다니랴 바쁜 아이들이기에 깨우기가 내심 미안하다. 하지만 오늘은 어린이날을 대비해 특별히 마련한 이 엄마의 선물, 바로 우리지역 군산으로 떠나는 여행이 준비되어 있다. 몇 해 전 아이들과 함께 기차여행으로 군산시내와 월명공원을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샅샅이 군산의 근대문화와 역사를 접하고 아이들이 가슴속에 ‘조국’이란 한 단어를 세기고 돌아오기를 기대해보며 떠나는 ‘탐방’이다.
가까이 있지만 마음에 두지 못했던 군산으로 떠나는 여행
전주에 정착한지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가까이 있는 도시 군산이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찾아본 군산의 명소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지경이니 주요관심도시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그동안 전주에서 군산으로 오고가던 기차도 이용객이 없어 운행이 중단된 모양이다. 하지만 기차타고 군산으로 이동해 배타고 떠나는 여행은 제법 그럴싸했는데 못내 아쉽다.
전주역 출발 후 군산역 도착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된다. 아빠 없이 돌아온 길에 아이가 조금 불안했는지 “아빠랑 같이 왔어야했는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새로이 단장한 군산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가이드 언니의 “다섯번째 딸이라 제 이름이 김오순입니다”라는 멘트로 오늘의 하루 일과는 시작이다.
아이들과 함께 탐방할 코스는 군산의 근대문화코스로 금강철새조망대-채만식문학관-발산리유적지-이영춘가옥-중식-근대역사박물관-구)군산세관-진포해양테마공원-동국사-신흥동 일본식 가옥-수산물종합센터(해망동)이다.
그동안 가까이 있어도 무심히 지나쳤던 군산, 오늘은 근대문화와 아픔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군산을 찬찬히 그리고 편하게 즐겨보려 한다.
수탈의 역사와 역경속에 이겨낸 우리의 문화를 찾아
군산역을 벗어나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논밭이 펼쳐지더니 군산철새조망대에 도착한다. 철새조망대는 전국 최초이자 국내 최고의 매머드급 360도 회전식 조망센터가 있는 곳으로 금강일대의 철새를 쉽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1박2일 이승기의 가창오리 군무 촬영 후 이곳은 꽤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아이들과 한차례 찾은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전망대 내부보다 외부의 시설물을 통해 맹금류와 주위에서 보기 드문 새들을 살펴보았다. 지난번 방문 때는 입장료를 주었는데 투어버스를 이용하니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의 세태를 풍자한 ‘탁류’의 작가 백릉 채만식선생을 만날 수 있는 채만식문학관으로 이동한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잦은 ‘미도장(쌀로 하는 노름의 일종)’ 출입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어려운 가정을 손수 꾸려나갔다는 그의 얽힌 일화들과 그의 책을 통해 그때의 시대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뒤이어 국가지정 보물 ‘군산 발산리 석등(제234호)’과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제276호)’을 보러 발산초등학교로 향한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보물을 자기네 농장으로 옮겨놓은 것도 놀랍지만 ‘일본인농장 창고’라는 이름으로 우뚝 선 콘크리트 건물 또한 놀랍기 그지없다.
“엄마! 여기가 일본사람이 자기 보물이랑 쌀을 보관하던 곳이예요? 그런데 열쇠는 미국산이예요!”
‘이곳에 넣을 귀중품이 쌓일수록 우리 조선인들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오전 마지막 코스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영춘 박사의 가옥을 만나러 간다. 이곳은 토지수탈의 실상과 한식, 일식, 양식이 복합된 건축양식 그리고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좁은 농로를 자전거를 타고 농민들을 돌보러 다니셨을 이영춘 박사의 생전 모습이 스친다.
건아들,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발도장을 찍다!
아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근대역사박물관 맞은편 영화시장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으나 문을 연 식당도 없고 사람도 없다. 결국 열심히 발품을 판 아이들을 위해 오늘의 점심은 자장면이다. ‘군산까지 와서 해물을 먹어보지 않고 갈 수 없다’는 굳은 의지하에 엄마는 굴짬봉을 선택했다.
오후 일정이 근대역사박물관과 구)군산세관에서 시작된다.
군산의 근대문화 및 해양문화를 주제로 하는 특화박물관인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직접 그 당시 학생복을 입고 인력거도 타보고 태극기 탁본도 찍어보며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해본다. 나무 책걸상에 앉아 주판을 두드려보는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기대하던 진포해양테마공원.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되는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군산 내항에 대한민국 해군함선 등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들이 전시된 곳이다.
작은 아이가 “엄마, 이 많고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다 옮겼을까요? 지금도 적군이 나타나면 대포가 나갈까요?” 라며 전쟁이 무언지도 모르는 작은 아이는 기쁘다 못해 설레이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로 이동한다. 우리나라 여느 절에 있는 화려한 단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잘 지어 놓은 주택 같다. 스님은 한분도 뵐 수 가 없고 뒤뜰의 강아지 ‘동백’이만 우리를 반긴다.
동국사에서 골목을 거닐며 신흥동의 일본인 히로쓰의 가옥으로 향한다. 정통 일본식 가옥으로 지붕이나 내부, 그리고 정원수로 가득찬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산 생물과 건어물 등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해망동 수산물 시장을 끝으로 오늘의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엄마의 대화는 오로지 일본인 대지주의 보물창고 이야기다. 아이들은 ''그 크고 견고한 보물창고에 금은보화를 얼마나 넣어뒀었을까''가 관심사이지만 ‘그 수탈의 현장에 있었던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았을까’하는 것이 엄마의 머릿속 그림이다.
오욕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는 군산, 한때는 그 가슴 시리고 뼈에 사무치는 역사를 지우고 싶어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쳐내고 싶었으나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역사이기에 그 현장을 보존하고 있음이리라.
“얘들아, 그 보물창고 안에 보물이 사실은 전부 우리나라 거였어.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빼앗고 우리 재산도 빼앗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은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꼭 우리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어 다시는 우리나라를 빼앗기면 안돼!”
TIP> 주4회 군산 시티투어 버스 운행!
군산시는 ‘2012년 전북방문의 해’와 ‘새만금 방조제 개통’과 함께 외래 관광객 및 시민들에게 군산 관광의 편익을 제공하고 관광 군산의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군산 새만금 시티투어 버스를 주4회(수금토일) 운행한다.
시티투어는 매주 수·일요일은 근대문화, 금요일은 은파호수공원-새만금, 토요일은 선유도-새만금 코스가 있고, KTX를 연계한 고군산군도-새만금 코스도 별도로 운행된다.
요금은 성인이 5,000원, 초중고 학생은 2,500원으로 오전 9시 반부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후 5시 20분까지 운행되는데 관광시 버스 탑승료 외 식비 등은 모두 불포함이다.
군산시 문화관광홈페이지(http://tour.gunsan.go.kr)나 프린스관광 063-466-7387에서 사전예약하고 입금하면 예약이 완료되며 예약한 날짜에 터미널이나 군산역에서 미팅을 하면 군산 시티투어는 시작된다. 원하는 경우 투어버스에 문화관광해설사가 동승하여 군산시의 문화유적 및 관광지를 친절하게 안내해 줘 편리하고 유익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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