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후계자에게 노하우 전수하고 싶어
동내면 사암리, 시골마을에 자리 잡은 한 농가주택에는 이른 새벽부터 종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지호공예가 한정수(68)씨가 살고 있다. 최근 작업 중이라는 쌀통은 물론 집안 곳곳 눈길을 사로잡는 가구까지 그의 손길로 태어난 수많은 작품에는 외로운 그의 인생과 장인의 숨결이 녹아 들어가 있었다.
실용적인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지호공예품
종이를 잘게 찢어 물에 불린 뒤 찹쌀 풀로 섞어 반죽한 다음, 찧거나 만져주면 끈기 있는 종이죽이 된다. 이것을 골격에 조금씩 붙여가며 말리고 또 덧붙여 마지막에 골조를 떼어내고 칠을 하여 마무리하는 지호공예. 그릇이 흔치 않던 시절, 다른 물품에 비해 만들기 쉽고 비용도 적게 들어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활용했던 지호공예는 사실 지금처럼 예술성이나 다양성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호공예품 위에 미적인 작업이 추가되면서, 한지공예의 한 분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종이로 만들어 약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나무보다 더 단단해 최근에는 실용적인 예술품으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강을 생각한 쌀통으로 상품화 도전
지호공예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막상 제품을 쉽게 만나기는 쉽지 않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고가에 거래되지만, 대부분 공산품과 같은 가격을 기대하는 대중들의 요구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수씨는 생각이 달랐다. “사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인 만큼 가격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작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3년간을 연구에 몰두했다. 직접 개발해낸 틀로 제작 시간을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쌀통이라는 특징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쌀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쌀이 보약이 되려면 제대로 보관해야 합니다.” 때문에 쌀이 들어가는 내부를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계피를 사용했다. 쌀의 상태나 맛을 유지하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강한 계피향이 문제였다. 그래서 찾은 것이 게르마늄. 약으로도 쓰인다는 말을 듣고 쌀과 과일을 담아 놓고 직접 실험해 보았다. 결과는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후계자에게 노하우 전수하고 싶어
3년의 연구 끝에 그는 지호공예로 만든 ‘쌀통’을 상품화 하는데 성공, 지난해부터는 인사동에 납품하게 되었다. 반응도 좋아서 그를 찾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병원에서 밤을 새가며 병수발을 들었지만, 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인사동의 많은 가게들은 제품을 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래를 끊었다.
그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춘천에 새로 문을 열 계획인 식당이나 카페가 있다면 한 곳 정도는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해 내부 가구를 재료비만 받고 만들어 줄 계획을 밝혔다.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알릴 기회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계자를 찾고 싶다고 했다. 아내를 잃고 보니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도 했다. “제가 자식이 없습니다. 이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것을 그동안의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인생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돈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상품은 후계자에게 넘기고 이제 저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의 010-7131-7502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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