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에 만난 꿈, 일단 시작해보는 거야~!
그이를 처음 본 것은 겨울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지난 2월 중순이었다.
일자리 설명회가 열리던 용인시노인복지관 강당,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초로의 그이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허리춤엔 카메라를 메고 수첩과 볼펜을 든 양손은 분주히 움직이며 역시나 같은 연배인 시니어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담아내던 그이.
사람들로 붐비던 그곳에서도 유독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던 이정자(72ㆍ언남동)씨는 짐작한대로 시니어 기자였다.
일흔이 되던 해까지 삼남매의 어머니이자 고단한 세월을 무탈하게 넘겨온 평범한 주부에서 하루아침, 기자명함을 가진 열혈 시니어로 인생 2막을 열었던 그이의 늦깎이 도전이 놀랍고도 궁금했다.
평범함 주부, 일흔에 기자되다
시니어들의 활발한 사회 활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는 요즘. 각 지자체의 주민센터나 문화센터엔 인문학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며, 문화여가생활을 즐기는 시니어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정자씨도 여느 시니어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사람 중의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실버넷 기자’라는 번듯한 직함을 하나 더 갖고 있다는 점.
이제 막 1년 남짓, 아직은 초보 기자로서의 좌충우돌을 겪어내고 있지만 그이에겐 내심 뿌듯한 명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흔이란 나이에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자 젊은 시절부터 꿈꿔오던 꿈을 실현했기 때문.
“남들은 직장생활도 해보고, 이것저것 사회경험도 해봤다지만 저는 8남매의 맏며느리로 층층시하 시어른들과 삼남매, 남편 건사하느라 꿈도 못 꿨죠. 그렇게 살림하고 내조하면서 살다가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게 얼마 되지 않아요.”
삼남매 잘 키워 내보내고 공직 생활 은퇴한 남편과 용인으로 이사 온 것이 8년 전.
이때부턴 조금씩 여유가 생겼고 그동안 속으로만 품어오던 열정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해보고 싶었던 취미생활과 배우고 싶었던 다양한 신세계를 원 없이 접하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녔더랬다.
젊어서 꿈꾸던 생활, 인생 2막에 이뤄
그러던 차에 먼저 들어가 기자로 활동하던 친구의 권유로 무작정 실버넷 기자에 지원하게 되었다는 이씨.
“막상 시작해보니 내 안에 잠재돼 있던 것이 하나하나 나오더라고요.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이 남들은 여간 어렵다고 하는데 비교적 수월하게 되는걸 보면 말이에요.”
이 씨가 사는 지역의 뉴스들을 취재해 기사 작성 후 올리면 데스크 작업을 3번 거쳐 최종 합격이 결정되고 뉴스로 게재되는 시스템.
이 씨는 1년 남짓 데스크에서 단 3번 정도만 퇴짜(?)를 맞았다. 그 정도면 아주 무난한 수준이라고.
사회경험 전무, 글 쓰는 직업은 가져보지도 않은 이 씨에게 기사 작성이 비교적 수월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70세에 생경한 일에 뛰어든 무모한(?)용기는 어떻게 나왔을까?
“젊었을 때부터 기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틈틈이 책도 읽고 친구가 수필 한번 써보라고 권할 만큼 글 솜씨도 제법 있었던 것 같고요. 웃음.”
이 씨가 활동하는 실버넷뉴스는 인터넷 신문으로 각 지역의 시니어들이 참여해 고장의 뉴스와 소식을 전하는 형태. 데드라인이나 마감기일이 없어 완성된 기사를 시간구애 없이 올릴 수 있단다. 때문에 큰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다고.
“지역 인물이나 행사들이 주요 취재 대상이죠. 한번은 6.25전쟁 경험을 구술한 것을 따님이 소설로 풀어 화제가 된 85세의 지역 인물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분 책이 미국까지 소개가 됐는데 책 판매대금을 미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해 기부하게 됐고 이어서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모금이 이어져 좋은 일에 쓰이게 됐어요. 제가 쓴 작은 기사 하나가 고리가 돼서 나눔의 파장을 만든 것 같아 뿌듯했지요.”
두려워말고 일단 시작하라
이밖에 용인의 93세 비뇨기과 의사, 시니어클럽의 두부 만드는 사람들, 지역에서 전통 장 만드는 인물 등 이 씨가 작성한 기사가 높은 조회 수를 보일 때마다 기자로서의 보람은 한껏 배가된다.
남들은 하던 일도 접을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이라는 이씨.
“용인 여성회관 1기로 등록해 처음 컴퓨터를 배웠어요. 하다 보니 차즘 자신감도 생겨 내친김에 컴퓨터 3급 자격증까지 땄지요. 취재와 함께 사진도 찍고 컴퓨터로 사이즈를 줄여 전송까지 해야 하니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해요. 카메라도 그래서 배웠죠. 워드와 컴퓨터, 디카를 다룰 줄 아니까 기자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더라고요.”
컴퓨터와 카메라도 새것으로 바꿔주며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더욱 힘을 얻는다는 이정자씨.
뭐든 배움에 두려움이 없어서일까. 최근엔 1년간 배운 통기타 초급을 졸업하고 중급 과정을 새로 수강하고 있다. 용인문화원에서는 시니어 합창단원으로도 맹렬히 활동 중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하루하루가 아쉽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뭐든지 배워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긴 인생에서 언젠가 쓰임이 되고 인생을 넓혀주는 도구가 될 테니 말이죠.”
누군가는 나이 50에 바다를 발견했다지만 이 씨는 일흔의 나이에 새로운 바다를 발견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앞으론 점점 더 오래 살잖아요. 미리부터 겁내지 말고 70부터 뭔가를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컴퓨터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일단 시작해 놓으면 어떻게든 되니까 저지르세요. 그러다보면 하나하나 채워져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하하하”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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