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취미(趣味)에 대한 설명이다. 어디에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라는 단어. 하지만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선뜻 자신의 취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곳곳에서 ‘1인 1취미 갖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실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주부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취미가 된 경우도 있지만 특별한 목적을 갖고 배우고 접하게 되면서 그것이 취미가 된 경우도 많다. 우리 이웃 주부들의 취미생활을 들어봤다.
박지윤 손은인 오미정 리포터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예술가, 이경자 (70·대치동)
올해 고희를 맞은 이경자씨는 가정과를 졸업하고 평생 동안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자녀 셋을 키운 이씨는 “취미를 가져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젊은 날을 회상한다. 그녀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허락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마음 닿는 대로 배우기 시작한 이씨. 처음 그가 배움의 문을 연 것은 서예와 사군자였다. 가까운 서예학원에 다니며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갔다. 재능이 있었던지 그 실력이 나날이 좋아졌다.
“손자들에게 생일 날 붓글씨로 좋은 글을 써 주거나 가훈이나 이름을 써 한 장 두 장 주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엔 제 글이 벽에 걸려있는 게 쑥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뭐 어때요? 제가 그냥 취미로 그려 손자들한테 선물한 건데요.”
이씨가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서양화, 그 중에서도 유화이다. 여성문화센터와 백화점강좌 등에 참석하며 유화를 배운 그는 틈틈이 도자기핸드페인팅도 배웠다. 많은 작품을 완성한 이씨. 그의 막내 손자는 이씨를 ‘화가할머니’라 부른다.
“제가 그린 그림을 아이들이 좋아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꽃구경을 가도 이젠 경치를 화폭에 옮길 생각부터 듭니다. 저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올봄부터는 디지털카메라를 배워보려 합니다.”
유기견에 관심 가지게 됐어요, 유영복(58·잠실2동)
“딸아이가 시집을 가고 아들은 직장에 다니니 낮 시간이 굉장히 무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20년 가까이 꾸준히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뭔가를 갈망하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인터넷에서 본 ‘유기견에 관한 기사’였다.
“‘유기견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유기견을 위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게 됐어요. ‘해피앤딩레스큐’라는 말 그대로 유기된 강아지들을 보호하고 입양해주는 인터넷 카페인데 카페에서의 활동이 정말 의미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가을이’라는 반려견을 11년 째 키우고 있는 유씨는 먼저 강아지 임시보호에 도전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개들이 입양 가기 전 잠시 머무르는 곳이 바로 임시보호가정. 임시보호 활동을 하며 ‘유기견’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이 커져만 간 유씨.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인터넷카페활동은 그에게 큰 생활의 활력이 됐다고. 자원봉사를 하는 젊은 회원들처럼 활발한 활동은 하기 힘들지만 열심히 올라오는 글을 읽고 후원도 하며 댓글도 열심히 달고 있는 유씨. 얼마 전 인터넷카페를 통해 직접 유기견을 입양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의 생명도 좀 더 신중하게 여기고, 또 버려진 유기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많은 취미를 가져봤지만 인터넷카페활동은 즐거움은 물론 제 삶까지도 변화시킬 만큼 그 의미가 큽니다.”
바리스타 공부로 고3 수험생 엄마 극복하기, 손은정(49·반포동)
2009년 아들이 고3을 맞은 손씨는 수험생 아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일이 필요했다. 평소 커피를 좋아했던 터라 바리스타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하기에는 교육비가 만만찮았다. 그런 그를 배려한 사람은 손씨의 남편. 그를 위해 대학교 평생교육원 커피전문가 과정을 등록해주었다. 커피에 취해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했다. 아들은 엄마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입을 준비했고 성적도 안정권을 유지했다. 넉 달 후 손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들은 취업을 위해 바리스타 공부를 하는데 저는 취미로 했다고 하면 사치라고 할지도 모르죠. 아시잖아요? 우리나라 고3엄마는 두려울 게 없는 폭탄이라는 거. 좋아하는 일하고 이겨냈으니 다행이지 신경안정제 없으면 견디기 힘든 게 수험생 가족들입니다. 큰 애 대입 마치고 바로 둘째가 수험생이 되니 미칠 것 같았어요. 그런 제게 좋아하는 커피 공부가 돌파구였어요.”
현재 손씨는 커피 로스팅의 묘미에 취해있다. 집에서 로스팅을 하다 보니 어느 날엔가는 로스팅 연기와 냄새 때문에 동네 사람이 화재 신고할 뻔한 적도 있었단다. “잘 볶아진 신선한 커피라면 어떤 커피도 좋아요. 특정한 커피가 맛있다는 법은 없지요, 그때그때 우리의 마음에 따라 신맛이 좋을 수도 쓴 맛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때론 커피믹스도 좋지요.”
도자기에 자연을 담고 싶은 효소 아줌마, 한숙희(54·곤지암)
남편과 함께 도자기 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숙희씨. 곧 있을 이천도자전 준비로 바쁜 요즘이지만 봄에만 나는 산야초로 효소 만들기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뒷산에 가면 효소 재료가 지천입니다. 처음엔 주방에서 쉽게 나오는 과일이나 야채 껍질 등을 이용해서 조금씩 담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양평 문호리에 사시는 김성만(생명소 연구원) 원장님을 뵙게 된 게 본격적으로 담게 된 계기지요.” 한씨 부부는 현재 효소의 발효와 숙성과정을 관찰하며 도자기 공예작업에도 응용하고 있다. “우리 부부의 산책코스였던 뒷산이 이젠 자연학습장이 됐어요. 하나하나 알아가니 더 신기하죠. 그래서 더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더군요.”
한씨는 인간의 건강과 환경 복원을 위해 효소를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효소재료 중에서 최고의 당장(설탕이용)거리는 잡초예요. 가장 흔한 풀이 생명력이 가장 강하죠. 그 효능은 산삼을 능가합니다. 청혈, 해독, 항균, 항염, 항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효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면 음식의 깊이가 다른 것을 느껴요. 조미된 음식은 혀가 먼저 알아서 거부합니다.” 한씨는 가정에서 먹는 야채나 과일껍질은 깨끗이 씻어 모아 조금씩 효소를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지금 당장 실천하세요. 그만큼 가족이 건강해집니다.”
테니스는 내 인생의 비타민, 남수경 (46·방이동)
“삶의 에너지고 비타민입니다.” 테니스 마니아 남수경씨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40대 접어들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파오자 대학시절 테니스동아리 활동을 즐겁게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집 근처 한국체대 사회교육원 강좌에 등록했다. 기본자세, 스윙 폼을 다듬으며 기본기를 다졌다. “대학시절 배웠던 걸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어요. 연습할수록 실력이 쑥쑥 느니까 재미있었죠.” 특히 한국체대에는 국내에선 드물게 실내 코트라 자외선 걱정 없이 맘껏 칠 수 있었다.
“예전에 헬스, 요가도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혼자 하는 운동이다 보니 게으름을 피우게 되요. 반면 테니스는 단식, 복식 짝을 이뤄 여럿이 하니 빠질 수가 없고 은근히 경쟁심도 생겨요.” 일주일에 두 번, 꼬박 3시간 넘게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다 보니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가끔씩 지인들과 번개 게임 모임의 재미도 쏠쏠하다. “한게임 치고 나면 땀이 흠뻑 나고 몸이 개운해져요. 또 테니스 경기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라켓을 손에 쥔 그에게서는 에너지가 넘쳤다.
‘세상의 단 한권 책’을 만드는 재미, 고지영(40·송파동)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고지영씨가 북아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년 전. 인테리어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던 차에 전공을 살리면서 아이들 교육에 도움 될 만한 취미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송파여성문화회관 북아트 1기 수강생으로 등록한 그는 타고난 손재주가 더해지면서 ‘세상의 단 한권 책’ 만드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파지를 재생 종이로 만들어 쓰면 질감이 독특해요. 신문지, 휴지 심, 자투리 천처럼 생활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개성 만점 책을 만들 수 있어요.” 특히 가죽공예, 냅킨아트, 스탬프아트까지 차근차근 배워서 북아트에 접목,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초등 5학년, 1학년생 아들과 딸의 체험학습 보고서를 만들 때도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십분 발휘했다. “역사탐험, 과학실험 등 테마별로 팝업북 형태로 만들어요. 다양한 재료로 예쁘게 꾸미는 재미 때문인지 아이들이 보고서 쓰기를 숙제라는 거부감 없이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여요. 특히 내용을 알차게 채우려고 아이들이 스스로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교육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어요.”
북아트 전문가 수준에 오른 그는 의기투합한 주부들끼리 ‘책숨’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공들여 준비한 북아트 전시회가 호응을 얻으면서 매주 송파여성문화회관에 부스를 만들어 작품판매에 나서고 있으며 방과후학교 강사로 나가는 등 점차로 활동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북아트를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된 게 최고의 선물이죠. 다음 목표는 나만의 공방을 내는 거예요.”
내 손으로 만드는 천연화장품, 최영순(52·고덕동)
7년간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 최영순씨. 두문불출하고 집안에만 드러누워 있던 그는 아로마 치료를 받아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집 앞 공방에 나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라벤더,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케모마일 등 다양한 아로마 오일을 활용한 테라피에 눈을 뜨게 되었다. 우울증이 차도를 보이자 천연 비누와 천연 화장품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3년간 꾸준히 공부한 덕분에 파프리카, 모과, 쑥, 벌꿀 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스킨, 로션, 수분크림, 립밤 등 다양한 천연 화장품이 그의 손끝에서 뚝딱 만들어졌다.
내친 김에 아로마테라피 DIY 1급 강사자격증까지 땄다. “올리브유, 미숫가루, 인삼가루, 각종 채소 등 요리하다 남은 자투리 재료로 얼마든지 수제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 수 있어요. 얼마 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딸이 커피 찌꺼기를 잔뜩 가져왔어요. 그걸로 바디 스크럽을 만들어 주었더니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좋아 하더군요.” 직접 만든 화장품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다보니 입소문이 나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소량 판매도 하고 있다. 집근처 중학교에서 CA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50대에 이렇게 중학생부터 30~40대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게 행복이지요. 젊은 기를 받으니까 활력도 넘쳐요. 게다가 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게 봉사도 할 수 있어 대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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