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를 넘어보겠다며 용을 써보지만, 손 따로, 발 따로…. 몇 번의 도전을 거듭했을까, 처음으로 줄넘기를 넘던 순간의 기쁨과 환희! 하물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어떨까.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뿐, 불가능이란 없다. 그 가능성을 발견하며, 줄넘기와 스포츠스태킹으로 심신의 장애를 극복해간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스포츠 교육현장인 매탄초등학교와 심검도체육관을 찾았다. 그 이상의 감동과 사랑, 희망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걸음마가 쌓여 3년,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아이들
늦은 저녁 고색동의 심검도체육관. 지난번에 배운 음악줄넘기를 복습하는 시간이다. 음악이 흐르고, 쉴 새 없이 마룻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줄넘기 소리는 마치 경쾌한 이펙트 같다. 무리 속에서 과한 동작을 보이긴 해도 잘 따라하는 동규(가명), 상기된 표정으로 친구들과 사범님을 번갈아가며 줄넘기에 집중하는 준영이(가명)가 보인다. 꽤나 능숙한 솜씨들. 이래 봐도 줄넘기를 배운 지 3년 여, 아이들의 심신은 성장했고, 학교성적도 제법 올랐다.
“2급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인데, 착석해서 선생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도 굉장한 발전이죠. 처음엔 자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물론 눈 맞춤이 전혀 안됐었거든요.” 대한장애인줄넘기연맹 회장이자 심검도체육관장 김덕수 씨는 아이들이 2~3년 만에 줄을 넘던 그때의 감동을 들려줬다. 정말 눈물이 왈칵 솟을 지경이었다. 줄넘기 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어렵던 중증지적장애아 현석이(가명)는 오랜 시간 끝에 줄을 돌리고, 두 발로 걸어서 넘을 정도의 수준이 됐다. 새로운 음악줄넘기 진도가 나가는 동안, 김 회장은 장애아들을 따로 모아 개인지도에 들어갔다. 몇 번의 실패 뒤에 엇걸어풀어뛰기 동작에 성공한 준영이가 이렇게 말한다. 마치 혼잣말로 자신을 격려하듯이, “조금만 하면 나 잘 하겠다”고.
뇌를 골고루 자극, 운동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장애인줄넘기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줄넘기는 5세 수준에 불과하다. 몸에 익히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굳이 줄넘기여야만 하는 이유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양손과 양발을 골고루 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대한장애인줄넘기연맹 김덕수 회장은 “지적, 발달장애 등은 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체를 고루 움직여서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면 뇌가 발달되고, 운동성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아이들의 집중력이 좋아지고, 운동능력이 좋아지는 걸 경험했다. 속도는 느렸을지언정, 한번 넘기 시작하면 힘든 동작을 쉽게 소화할 정도의 수준이 된다. 머리와 몸으로 학습한 것들이 숨고르기(운동을 쉬는 시간)동안 폭발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런 장점들이 부각되면서 토요일엔 장애인체육회 지원 사업으로 무료 줄넘기수업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처음으로 비장애인대회의 들러리가 아닌 장애인줄넘기대회란 타이틀로 대회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잘 가르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 마주치는 것도 안 되고, 관심도 없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장애아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김 회장은 강조한다. 소통을 통해 아이의 특성에 맞는 세분화된 가르침이 뒤따르지만 변수는 있기 마련. 어르고 달래는 진심어린 사랑이 더디기만 한 시간을 극복하게 해준다.
매탄초 특수학급의 방과 후, 줄넘기&스포츠스태킹으로 즐기다~
긴 줄넘기를 넘으며 그 안에서 엇걸어풀어뛰기, 이중뛰기를 하고, 더블터치 등 다양한 동작을 이어간다. 매탄초등학교 특수학급 사랑반 아이들의 고난도 동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12개의 컵을 3-6-3 대형으로 빠르게 쌓고, 정리하는 스포츠스태킹은 박규빈(초6)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 엎드린 자세에서 팔꿈치를 대지 않고 쌓기 등 미션수행도 곧잘 해낸다. “시간 안에 빨리 하는 게 가장 좋다”고 규빈이가 씩씩하게 말한다. 이병준(초6)은 “운동할 때 기분이 제일 좋다”며 긴 줄넘기가 자신 있다고 했다.
“청각장애, 발달장애, 정신지체 아이들이 있는데, 4~5년 정도 줄넘기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능력이 엄청 자랐어요. 스스로도 희열을 느끼고, 기다림을 알게 하고, 집중력을 키워주는 등 통합교육에 꼭 필요한 과정이죠.” 얼마 전 시작한 스포츠스태킹도 눈귀의 협응 능력, 집중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줄넘기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석영숙 특수학급 교사는 설명한다. 단1초도 집중하지 못하던 행동과잉장애아가 40초 동안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김덕수 회장은 덧붙였다.
통합교육으로 이끌어가는 장애와 비장애 아이들의 ‘함께’
달라진 아이들의 능력은 지난해 처음 실시한 특수학급 발표회에서도 그대로 보여 졌다. ‘장애아들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은 준비하는 동안 참 열심이었고, 행복해했다. 요리, 미술, 난타, 운동으로 진행되는 방과 후 활동과 다양한 현장체험학습 등이 진행되는 사랑반을 바라보며 오히려 비장애아들이 이들을 부러워한다. “오죽하면 나도 사랑반 가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는 석 교사는 “지금 고학년 아이들에게 장애인은 그냥 친구다. 장애가 아닌 그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고 바라봐줄 수 있다”고 했다. 몇 년 동안 통합교육을 함께 받으며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결과다. 장애아를 둔 엄마들도 아이의 변화와 주변의 반응에 표정도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처음엔 돌발 행동하는 아이들 때문에 비장애 아이들이나 부모들도 굉장히 싫어했죠. 하지만 지금은 서로 이해하게 되고, 장애인 친구들이 안 보이면 먼저 찾고 챙겨요. 스스로를 장애인 친구들의 보호자라고 생각한다니까요.” 김 회장은 통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 친구들에게 소그룹 속에서 반응하고 나아갈 수 있는 나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대일 수업에 갇혀서는 안 된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이제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와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그 누림의 바탕이 되어줄 줄넘기와 스포츠스태킹이 보다 많은 장애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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