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냇머리 기증한 꼬마 라푼젤 하승애(9)양

지역내일 2012-04-29 (수정 2012-04-30 오전 12:20:49)

 “제 머리카락이 어린이날 선물이 된다니 기뻐요”


 


벚꽃이 꽃눈이 되어 흩날리던 지난 4월 21일, 용인시 모현면의 한 미장원에서는 난생 처음 머리를 자르는 여자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약간은 긴장한 듯 가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던 꼬마 숙녀 하승애(9)양의 찰랑거리던 긴 머리는 가위질 몇 번에 이내 뭉뚝해졌다.
“기분이 이상해요. 짧아진 머리를 보니까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아직은 실감이 안 나는지 겨울 속 자신의 모습을 연신 바라보는 승애양의 미장원 방문은 사실, 조금은 남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만 8년을 길러온 머리카락을 소아암 친구들의 가발을 만들어주기 위해 기증하기로 한 것. 태어나 한 번도 자르지 않아 배냇머리부터 길러온 승애양의 길고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은 그렇게 의미 있는 선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승애 가족의 머리카락 기르기 프로젝트



승애양의 머리카락은 약 100cm 길이로 또래보다 발육이 빨라 140cm를 웃도는 본인에게도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길이.

동네에서도 라푼젤로 불리는 승애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예쁜 가발이 친구들에게 선물이 되어 돌아갈 것에 약간은 기대와 흥분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승애가 이처럼 깜찍하고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엄마 서미경씨의 의견이 주효했다.
“5살 위로 오빠가 있고 터울 많은 딸을 얻어 애지중지 키웠죠. 아기 때는 머리숱도 적은데 빡빡 밀자니 안쓰러워 그냥 놔두고 길렀어요. 3년이 지나 말문이 트일 무렵엔 승애가 긴 머리가 좋다며 자르기 싫어하더라고요.”
그렇게 아이의 의견이 더해져 3년을 더 기르다 보니 이제는 아까워 함부로 자를 수가 없었다는 미경씨.
“6살 이후로는 좀 더 길러서 좋은 뜻에 써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어요. 아이도 좋아하고 가족 모두의 동의하에 승애의 머리카락 기르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거죠. 하하.”
언뜻 보기엔 긴 생머리가 그저 신기하고 예뻐 보였지만 지금껏 머리카락을 관리하고 길러오는 데에는 온가족의 협조와 승애의 힘겨운(?) 노력이 더해져 가능할 수 있었단다.



머리감고 말리는데 1시간, 온 가족의 도움으로 길러와
“길이가 있다 보니 머리카락 무게도 만만치 않아요. 승애 목이 자꾸만 뒤로 넘어가고 고개가 들려지는 거예요. 아침에 머리손질 하는 것만도 30분이 걸리고요.”
1m의 머리카락을 지탱하기 위해 승애는 그렇게 날마다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아직 어린 승애에게 머리를 감는 일은 막중한 일과 중의 하나. 작년 겨울방학부터 비로소 혼자 머리를 감게 됐다는 승애는 남들보다 3~4배 오래 걸리는 머리감기가 조금은 버거웠노라고 고백한다.
“샴푸도 4~5번 짜서 거품내야 하고요. 제 전용솔로 빗어준 다음 마지막에 샤워기로 헹궈요.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듯이 감아야 해서 시간도 조금 많이 걸려요.”
야무진 말솜씨로 조목조목 그동안의 머리 관리를 설명하는 승애양.
등교준비로 바쁜 아침에 머리감는 일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라며 귀여운 손사래를 친다.
승애의 머리카락 관리는 온가족 도움이 필수다. 머리를 감고 나오면 드라이어로 말리는데 만 30분, 골고루 잘 말려줘야 두피가 건강해지고 빗질도 꼼꼼히 해줘야 엉키지 않기 때문.
“자기 전에도 항상 빗질하고 머리를 따줘야 해요. 그래야 아침에 엉키질 앉죠. 학교가기 전에 다시 빗질하고 머리를 양쪽 4갈래로 따줘요. 머리무게 때문에 목이 뒤로 넘어가지 않고 무게가 분산되게 하려고요.”
여름엔 이틀에 한번, 겨울엔 2~3일에 한번 머리를 감고, 말리고, 손질하는 일이 승애 가족의 중요한 일과가 된지 만 8년. 학교에서는 머리카락이 쏠려 급식이나 치약을 묻혀오는 것도 다반사. 의자에 끝 부분이 걸려 넘어가기도 하는 등 머리 관련한 크고 작은 헤프닝도 이젠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가족의 아픔이 기증과 연결돼

“뜻을 구체화 시킨 건 작년 ‘내일신문’에 소개된 분당경찰서 여경사의 머리기증 기사를 보고 나서였어요. 그때부턴 승애도 머리카락을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하기 시작했죠. 아직 어려서 숱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싶어 일부러 1년을 더 길렀고요.”
소아암 협회에 알아보니 25cm이상 3묶음이 있어야 하나의 가발이 완성된다는 말에 머리를 좀 더 길러 완성된 가발을 만들고 싶었던 가족들.
“머리카락을 잘라서 택배로 보내주면 협회에서 가발을 만들어 소아암 환자에게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기증하는 방법도 찾아봤는데 그건 여의치가 않았고요.”
태어나 파마나 염색을 해본 적이 없는 승애의 머리카락은 기증의 조건에도 완벽히 일치.
승애와 가족들은 빨리 가발이 완성돼 어린이날 선물로 아픈 친구들에게 전달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사실 저도 몇 년 전 갑상선암을 앓았어요. 저희 아주버님도 암으로 돌아가셨고요. 가족들에게 암과 관련된 아픔이 있다 보니 승애도 암과 친숙하죠. 그래서 기증하는 것을 승애가  더 좋아했고요.”
머리를 자른 후에 어떻게 할거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또 길러서 기증할거라고 말하는 당찬 꼬마숙녀 승애양. 장래 꿈이 20개도 넘지만 요즘은 화가 쪽으로 기울었다며 자신 있게 그림을 보여주는 꼬마 라푼젤 승애의 밝은 표정에서 맑은 꿈이 자라는 것이 보였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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