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제자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어요. 부모님이 작은 중국집을 운영해 짜장면 배달을 다니느라 늘 피곤한 고교 시절을 보내다 어렵게 지방대 공대에 진학한 아이였어요. 군 제대 후 국민대 기계자동차공학부 편입시험에 붙어 너무 기쁘다고 합격 확인을 하자마자 연락했더군요.” 학생들에게 건대부고 김준근 교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졸업한 뒤라도 기쁠 때나 마음이 허전할 때 허물없이 전화 걸 수 있는 가족 같은 선생님이다.
진심 담아 격려하면 아이들은 성장한다
교직 경력 13년차인 그는 아이들과 ‘소통’을 위해 부단히 애쓴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작은 스프링 노트에는 담임을 맡은 학생 개개인들의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 언행을 세심하게 관찰해 빼곡히 기록해 놓는다. 미니 홈피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까지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학생들과 늘 교감한다.
“교사가 된 후 직업병처럼 ‘관찰 습관’이 생겼어요. 늘 60점 맞던 아이가 어느 순간 70점으로 오르면 그 아이 입장에서는 큰 발전이에요. 진정성을 담아 격려해 주죠. 이런 ‘작은 성공의 경험’을 맛본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갑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만큼 중요한 것이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늘 강조한다.
김준근 대리, 늦깎이 화학 교사되다
경북 상주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교 시절 내내 혼자서 자취하며 어렵게 보냈다. “과학 선생님이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과학 조교로 발탁해 주셨어요. 그때 온갖 실험도구와 시약 만져 보면서 과학의 재미에 눈 떴죠.” 그 뒤 교원대 화학교육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사범대 졸업생의 당연한 코스인 ‘교사’란 직업을 선택할 지 망설여졌다.
“사회 경험을 두루 쌓은 후 교사가 되도 늦지 않다는 친구 아버님의 충고에 용기를 얻어 대기업에 입사했어요.” 쌍용양회 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뒤 건설 현장을 돌며 ‘영업맨 김준근’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새벽 같이 출근해 밤늦도록 뛰어다녔죠. 성취감도 맛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귀소본능처럼 언젠가는 학교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때문에 화학 전공 서적도 손에서 놓지 않고 탐독했어요.” 입사 5년 만에 ‘김준근 대리’에서 ‘김준근 화학 교사’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큰 아들이 세 살, 둘째 아들이 막 돌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이 갈수록 커졌어요. 사표를 던지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차에 우연히 건대부고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승부수를 던지고 올인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인생의 가르침도 함께 얻었다.
늦깎이 초임 교사가 된 그는 학교생활이 신바람 났다. 새벽까지 수업 준비하며 아이들을 가르쳐도 지칠 줄 몰랐고 발명만 동아리, 창의력 올림피아드반을 맡아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내가 툭 던진 한마디에 아이들이 힌트를 얻어 뭔가를 만들어 내고 시행착오 끝에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 그 모습이 참 예뻤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라는 뿌듯함이 나를 성장시켰죠.”
그 뒤 고3 담임을 내리 6년을 맡을 만큼 모든 열정을 학생들에게 쏟았다. 주중은 물론 토,일요일까지 반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 자율학습을 했다. “졸업한 제자들과 지금도 자주 만나요. 고3 시절을 회고하면서 담임인 내가 너무 지독하게 굴어 많이 괴로웠다고 해요(웃음). 그래도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통틀어 공부에 가장 집중했고 하면 된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고 다들 말해요.”
제자들 대입 원서를 쓸 때는 그도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12년 공부 농사와 미래의 인생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중압감이 늘 짓눌러요. 입시자료를 끊임없이 분석하며 지망대학, 학과를 결정짓죠. 특히 학생들 진학지도를 할 때 회사 다닌 경험이 큰 도움이 되요. 진학과 진로를 연계해 대학 졸업 후에 어떤 직종에서 일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으니까요.”
‘차가운 이성, 뜨거운 가슴’ 주문처럼 외다
교사로서 연륜이 쌓일수록 고교시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제자가 졸업 후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통해 무럭무럭 성장하는 모습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아이들의 숨어있는 1%의 잠재력을 찾아주기 위해 늘 애쓴다. 특히 그 자신이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탓에 불우한 환경의 제자들에게 더 많이 마음이 쓰인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능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을 끈질기게 설득해 대학에 보내는 등 ‘삼촌’ 역할을 자청한다.
올해는 연구행정부장 보직까지 맡게 되어 교원 평가,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수업혁신 등의 실무를 챙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학교는 서울시 학교 가운데 2년 연속 고교선택권제 1위를 차지했어요. 다들 자부심이 남다르죠. 더 분발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입니다.”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건대부고 교사’로서 현재의 삶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차가운 이성, 뜨거운 가슴을 가지라고 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늘 주문처럼 읊조리죠.”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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