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숨결 간직한 그 곳, 공주
꽃과 백제의 향기에 취하다
백제중흥의 발자취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무녕왕릉,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교과서로만 보던 백제의 유물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공주 여행 몇 주 전부터 들떠 있었다.
지난 주말, 공주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유기농 쌈 채소, 허브, 식용꽃 등을 재배하고 있는 ‘엔젤 농장’.
비밀의 화원같은 엔젤농장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허브와 꽃들로 가득했다.
천연화장품과 허브비누 만들기 체험, 식용꽃 맛볼 수 있는 엔젤농장
이 곳에서는 천연화장품 만들기, 허브향주머니만들기, 허브비누 만들기, 허브꽃쿠키 만들기, 쌈채소수확체험도 할 수 있다. 다양한 허브제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도 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비단향꽃무·한련화 등의 꽃 샐러드, 팬지꽃 샌드위치는 새콤달콤하기도 하고 쌉싸름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하트 모양, 장미 모양 틀에 허브 비누 원료를 붓고 굳기를 기다리며 들떠 있었고 나도 7가지 허브 추출액으로 천연화장품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다.
우리는 넓은 농장 이곳 저곳을 거닐며 안승환 엔젤농장 대표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허브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알콜 성분이 많은 유칼리 나뭇잎에 취해 호주에서는 코알라가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를 많이 당하기도 하고 알콜 성분이 휘발되면서 쉽게 자주 산불이 나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눈과 입을 비롯해 오감이 즐거웠던 엔젤농장에서의 추억을 뒤로 하고 우리는 무령왕릉을 보기 위해 송산리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3천여 점 유물이 발견 된 백제 역사의 꽃, 무녕왕릉
교과서에서만 봤던 무령왕릉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기대됐다.
송산리 고분들의 실제 내부는 1997년 이후로 문화재 보존과 관리 때문에 폐쇄돼 볼 수 없었지만 실물 그대로 복원해 놓은 모형관에서 그 형태와 특징을 잘 알 수 있었다.
“송산리 고분의 1~5호분은 깬돌을 쌓아 만든 반원 굴식 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7호분)은 굴식 벽돌무덤입니다. 중국 남조의 무덤양식을 받아들여 만든 무덤이죠. 무령왕릉은 서로 봉토를 접하고 있는 다른 고분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어요. 무령왕릉은 국내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굴이자 최악의 발굴로 꼽힙니다. 출토된 유물들의 내용과 더불어 고대 무덤의 주인을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최고라 꼽히지만 엄청난 발견에 지나친 관심이 쏠린 나머지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속성으로 발굴을 끝내고 현장을 출입하는 기자들로 인해 원형과 유물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해 최악으로 기록되고 있어요.”
우리는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무령왕릉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무령왕릉이 발견되기까지 고대의 무덤 중에서 그 주인이 밝혀진 경우가 없었으니 이곳에서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이다)’이라는 지석의 발견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흥분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유물은 100여종 3천 여점에 이르며 대부분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무녕왕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백제 박물관이자 백제 역사의 꽃이었던 셈이다.
무령왕릉 내부 연꽃 모양을 새긴 벽돌들은 당시 불교적 세계관에서 무덤이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반원의 연꽃 모양 벽돌 두 개가 마주해야 하나의 완전한 연꽃 모양이 완성된다. 그 벽돌 문양처럼 왕비와 나란히 누워 큰 연꽃처럼 평화로운 모습으로 영면에 든 무령왕의 모습이 그려졌다. 문헌에 의하면 무령왕의 얼굴이 요즘 말로 꽃미남처럼 호남이었다고 하니 그 모습이 정말 궁금했다.
백제 중흥의 꿈과 발자취 간직한 공산성
고구려의 전쟁에서 패하고 신라와의 협력마저 깨어지면서 한강유역을 잃어버린 백제는 눈물을 머금고 위례성을 포기하고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옮긴다. 다시 나라 기반을 세우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게 되는데 그 시기가 바로 바로 백제 25대 무령왕 때다. 그는 22년간 통치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백제 중흥을 도모한다.
우리는 송산리 고분 내부에 대해 예비학습을 하고 무령왕릉과 고분 주변의 멋진 둘레길을 산책했다. 무령왕릉 주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산성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옛 백제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 있을 때, 이곳을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웅진은 문주왕, 동성왕, 무령왕을 이어 성왕 16년이던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수도였다. 봄날의 신록을 만끽하며 공산성도 거닐어 보면 백제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백제 중흥을 꿈꾼 무령왕은 왕비와 나란히 무덤에 누워서도 공산성을 내려다 보며 백제의 안녕을 염원했을 것이다.
금제관식, 동탁 은잔 등 아름다운 유물 가득한 공주박물관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로운 무령왕릉 둘레길을 뒤로 하고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1층 대부분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니 무령왕릉 내부를 지키고 있던 상상 속 동물 석수가 우리를 반겼다.
금제관식, 은팔지, 목걸이, 귀걸이, 은잔 등의 화려하면서 단아하고 기품있는 유물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러움마저 간직하고 있었다. 금제관식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불꽃문양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 생동감 넘쳤다. 특히 동탁은잔의 소박하면서 화려한 문양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탁은잔은 청동제 받침(동탁)과 은으로 만든 잔(은잔)을 합친 것이다. 단아한 산봉우리 같은 잔 뚜껑에는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 짐승들이 노닐고 위로 올라가며 나무가 새겨져 있고 꼭대기에는 연꽃잎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뚜껑 덮힌 잔의 윗부분에는 구름무늬가 부드럽게 표현되었고 그 밑으로 3마리의 용이 유유히 날고 있으며 이 모두를 연꽃과 고사리 같은 꽃들이 포근히 감싸고 있다.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조화로운 세계관을 작은 은잔에 그대로 투영할 줄 아는 백제인들의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미의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다음 코스는 5분여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공주한옥마을. 공주한옥마을 내 숙소 앞에 있는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은 투호와 굴렁쇠 굴리기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백제의 아름다운 발자취와 멋을 그대로 간직한 공주에서의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엔젤농장의 화려한 꽃들의 달콤한 향기와 물 위에 수줍게 떨어진 매화꽃의 아련함, 진흙빛 연못 위에 핀 연꽃의 단아함 같은 백제의 향기를 우리 아이들은 먼 훗날 기억할까.
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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