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져만 가는 요즘, 오늘이 아니면 이번 겨울을 그냥 그렇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떠나는 겨울을 잠시라도 붙잡고 싶어 산행을 준비한다.
주변의 지인들이 산행을 마친 뒤 입이 마르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장수 장안산으로의 겨울 산행, 하얀 순백의 세상으로 떠나본다.
사과의 고장 레드 장수, 하얗게 물들다!
며칠째 몰아치던 한파가 조금 잦아든 주말의 이른 오후, 전주역을 출발해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장수 장안산 무룡고개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산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무룡’을 간혹 ‘무령’으로 표기한 지도를 볼 수 있는데 ‘무룡’을 잘 못 듣고 ‘무령’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본디 ‘무룡’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장안산을 오르는 오늘의 탐방코스는 무룡고개를 출발해 정상을 밟고 다시 내려오는 왕복 6km를 걷는 구간으로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짧고 편안한 등산로이다.
장안산(1,237m)은 198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덕산용소와 방화동, 지지계곡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기암괴석과 원시수림이 울창하고 심산유곡에 형성된 연못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관광지로 덕산계곡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계곡 26개소 및 윗용소, 아랫용소 등 7개의 연못, 지소반석 등 14개의 기암괴석, 5군데의 약수터 등 주요경관이 울창한 수림과 어울려 수려함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의 광활한 억새밭으로 가을에 특히 인기가 많은 장안산은 겨울엔 부드러운 눈길을 자랑하는 눈꽃산행을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인 산이다.
깊은 산중에서 설원을 만나다!
산 아래 계남면 장안리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장안산의 시작은 계단식 데크를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초입의 나무데크 난간으로 진입로를 확인할 수 있지만 쌓인 눈 때문에 계단의 상판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5분정도 오르자 우편에 팔각정이 보인다. 그리고 팔각정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자 맞은편에 영취산이 두 팔을 벌리고 근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다시 시작된 산행, 높은 산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등산로에 날카로운 바위도 없고 낭떠러지도 없어 겨울 산행에도 매우 안정적이다.
먼 곳에서 볼 땐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수채물감으로 점을 찍은 듯 희끗희끗하게 보이던 눈이 실제로 산속에서는 그 깊이에 놀랍다. 제법 오래 조릿대 군락지로 이어진 등산로를 걷는데 양옆으로 쌓인 눈의 높이가 무릎을 넘긴다.
쌓인 눈으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50여분을 오르자 조망과 촬영을 위한 전망대가 보이고 가을에는 억새로 그 아름다움을 뽐냈을 능선이 나온다.
그렇게 눈과 함께 뒹굴며 도착한 장안산 정상, 하지만 정상에 선 오늘의 기분은 다른 날과 사뭇 다르다. 아마도 싸아한 겨울바람이 부는 정상보다 눈과 하나 되는 설원속의 내가 더 행복하기 때문은 아닐까?
선녀님이 뿌려 주신 생크림, 역시 맛이 달라
40~50대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눈이 오면 비료푸대를 깔고 썰매를 탔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썩 넉넉하지 않던 시기에 겨울철 눈이 오면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 눈싸움과 썰매타기로 온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던 그 시절.
장안산을 오르는 동안 제법 경사진 등산로와 억새의 흔적을 가리고 하얀 생크림이 소복이 내려앉은 비탈진 곳에서는 어른들의 장난끼가 발동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눈밭을 뒹굴며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이도, 등산복 차림 그대로 눈썰매를 타는 이도 하나같이 그 얼굴엔 동심의 미소가 가득하다.
전주에서 온 한 등산객은 “비료푸대를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요. 이렇게 큰기쁨을 기대하지 않고 왔는데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도 무리 없이 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꼭 한번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남한의 8대 종산 중 하나이자 호남의 종산으로 불리는 장안산. 또 산림청 지정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로도 선정되기도 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올해 ‘2012년 전북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전북을 찾는 산악인들에게 여름의 시원한 계곡과 산등선이 하얀 억새의 장관을 함께 추천해 본다.
하산 길 무룡고개 휴게소에서 맛본 감자전 한입이 나의 영혼을 배부르게 한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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