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 영화 블로거 ‘발없는새’ 배재문

영화 블로거에서 영화제 스태프까지

지역내일 2012-04-06 (수정 2012-04-06 오전 8:42:08)

영화를 본다, 읽는다, 만든다. 영.화. 보는 이에게는 오락이고 만드는 이에게는 직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를 걸만큼 매력적인 존재다. 남다른 시각으로, 소소한 부분까지 포착해내는 예리함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 두 시간짜리 마법에 푹 빠져 리뷰를 쓰는 영화 블로거, 배재문(33, ID 발없는새)씨를 만났다.




Q 영화 블로거로 활동하다가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스태프가 됐다.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영화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여러 언론사에 기고도 겸했다. 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사무국장님이 예전 부산디지털컨텐츠유니버시아드(BUDI)에서 일할 때 제 블로그를 본 뒤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부탁했고, 그 이후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게 됐다. 박봉이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스스로 만족한다. 이만하면 나름 멋진 인생이다 싶어 뿌듯하기도 하고.


Q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소개를 부탁한다.
A 올해로 29회를 맞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1980년에 ‘한국단편영화제’로 출범한 국내 최초의 단편영화제다. 초기에는 국내 작품만이 대상이었으나 2000년에는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로, 2010년부터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로 개편하면서 규모와 무대를 확대했다.
그 사이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세계 영화계에서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단편영화를 활성화시키는 데 주력했고, 이는 곧 장편영화 시장을 탄탄히 하는 주춧돌로 작용해 영화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실제로 강제규, 이정국, 양윤호, 김태용, 민규동, 임필성, 류승완, 정윤철 등 현재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Q 단편영화만의 매력을 꼽으라면?
A 찰나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가 많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부부들을 빠르게 포착해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 반짝이는 재치가 돋보인다. 또한 유명 영화감독 중 단편영화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의 성장을 발견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Q 한 포털사이트에 영화 리뷰를 쓰면서 유명해졌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A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미니홈피에 글을 많이 썼다. 방문자 수가 늘어가니 나도 모르게 자꾸 숫자에 집착하게 됐고 그런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블로그로 넘어왔고. 블로그는 혼자 노는 공간으로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또 다시 커져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제는 제법 초연해졌다. 영화 리뷰는 영화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다. 또 좋은 영화를 널리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


Q 영화를 고르거나 감상할 때 나만의 습관이나 다른 시각이 있는지.
A 영화를 고를 때 특별한 방법은 없다. 가급적 많은 영화를 보려고 하는 편이라 무작정 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대부분은 감을 믿고 간다. 그렇게 해서 본 영화가 실망스러우면 어쩌냐고? 시간과 돈이 좀 아깝긴 하겠지만 그런 재미로 영화를 본다. 매번 완성도가 높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만 보는 것보다는 형편없는 영화, 지루한 영화도 섞여 있는 경우가 좋은 영화를 더 돋보이게 해주기 마련이니까. 재미없는 영화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감상할 때는 조금 삐딱하게 보려고 한다. 눈을 부라리고 ‘그래, 네가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인지 한번 두고 보자’라는 식이랄까. 이런 감상태도 때문에 다른 블로거들보다 글이 좀 더 가혹한 편이다. 재미있으면 있다, 재미없으면 없다고 확실하게 드러낸다. 다만 리뷰는 어디까지나 주관에 따른 판단일 뿐인데 가끔 리뷰만 보고 관람여부를 판단하는 걸 보면 무지 부담스럽다. 그냥 이런 의견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봐주셨으면 한다.


Q 블로그의 장·단점을 말하자면?
A 장점이라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된다는 것. 어렸을 때는 주변에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다. 그 때문에 PC통신을 하게 되면서는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차차 인터넷으로 바뀌자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활성화됐다. PC통신 때와 비교하면 네티즌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가끔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블로그라는 게 아쉽기도 하다. 또 종종 온라인 관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서로 가깝고 친밀해도 결국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제아무리 온라인 사회가 발전해도 실제로 사람들과 부대끼는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물론 블로그를 통해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다들 현실에서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그리 풍족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을 거치면서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으로 20대를 보냈다는 배재문씨. 그런 그에게 영화는 함께 세상을 알아가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쉬고 있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란다. “그 때 깨달았죠.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걸. 내가 원하면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 이후로 세계관이 많이 바뀌었다며 앞으로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쓰면서 궁극적으로 나만의 작품을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주인공과 함께 모험하고 사랑에 빠지고 달콤한 꿈에 젖는다.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를 받고 울고 웃고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두 시간이 선사하는 행복감.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영화를 본다. 누가 뭐래도 언제나 영화처럼.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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