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에게 밥상이란 늘 ‘오늘은 무얼 해 먹지?’라는 번민의 대상. 요즘은 먹거리와 주방기구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의 위협으로 걱정이 더 늘었다. 뿐이랴,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로서 넘쳐나는 갖가지 환경호르몬에도 촉각을 세워야만 한다. 조금만 주의하면 친환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형미 주부. 그와 만나니 걱정은 뚝, 실천의 기쁨은 봄바람마냥 살랑살랑 다가온다.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한 환경호르몬
3월이 시작된 어느 금요일, 한일타운(조원동)의 이현주 씨네 집이 들썩들썩한다. 한일타운에 거주하는 미래생협 주부회원들이 모여 ‘환경호르몬과 성조숙증’에 대한 강연을 듣고 모임도 가질 예정. 오늘의 강사로 나선 이가 바로 이형미 씨다. ‘호르몬과 환경호르몬의 차이,’ ‘성조숙증’, ‘일상생활 속 환경호르몬의 노출 정도’ 등이 생생한 사례를 통해 설명된다. 무심코 먹었던 식품이나 사용했던 제품들에 다량의 유해성분들이 함유돼 있고, 평소 생활에서 환경호르몬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 유해한 호르몬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여성들에게는 생리통, 여성암, 불임, 성조숙증 등을, 남성들은 생식기이상, 정자수 감소, 여성형 가슴 등을 증가시킨다. 아이들의 성조숙증을 비롯한 갖가지 질환도 환경호르몬에서 기인해 늘고 있다.
주부들 사이에서 그 동안의 무지에 대한 반성이 터져 나온다.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설명으로 유익했고 확실한 공감을 주었다’며 만족해하는 김정순 씨.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니 실감났고, 가족을 위해 꼭 실천해야겠다는 의지를 준다”는 박은경 씨. “몰라서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다. 물건들도 무심코 구입하곤 했는데 잘 살펴봐야겠다”는 천수경 씨. 모두모두 오늘부터는 생활이 달라질 것을 예견한다.
아이의 아토피, 일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친환경적인 삶을 강조하는 열혈 주부 이형미 씨도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의 아토피가 삶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신했을 때 닭백숙이 당겨 거의 매일 먹었어요. 그것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생후 100일부터 아이가 아토피를 앓게 됐죠.” 모든 엄마들은 가려워도 제대로 긁지도 못하고, 우는 아이의 고통 앞에 먹거리부터 변화시켜 나간다. 이 씨도 그랬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식품안전 교육을 받을 기회를 만들었고, 생협 식품위원 활동가로 변모시켰다.
그이의 변화는 일상적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먼저 냉장고가 홀쭉해졌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시절에는 무계획적으로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식품들로 욕심껏 채워 넣었다. 이제는 유기농 야채나 신선 제품을 위주로 먹을 만큼만 소량 구매해 금방 요리해 먹는다. 섬유에 있는 화학가공품은 세탁할수록 사라지기 때문에 한 번 산 옷은 오래 입는다. 특히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게는 오래 입을수록 보약이 된단다.
가족의 건강이 더불어 찾아왔다. 중2인 아들의 아토피 상태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식품첨가물을 확인하는 습관은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초등학교 때는 첨가물이 많이 함유된 군것질거리는 안 먹고 가져와서는 수업교재로 쓰라고 주곤 했다.
“의식주 모든 생활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따져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삶은 우리 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음 세대를 위해 음식과 숨 쉬고 생활하는 일상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아무런 반성 없이 살아가면 다음 세대는 자연 속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조차도 불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조금씩 바꿔나가면 어렵지 않아요!
이형미 씨가 전해 주는 생활 속 실천은 조금의 관심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주방에 있는 그릇, 용기, 조리도구부터 생각해 보자. 플라스틱류를 멀리하고 유리나 스텐레이스, 도자기류를 쓰도록 한다. 부득이하게 플라스틱용기를 써야만 한다면 차갑거나 건조한 음식만 담는다. 뜨겁고 기름에 볶은 음식은 용기의 유해성분들을 잘 분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부들은 테플론이 코팅된 프라이팬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PFOA(퍼플루오로옥타노익 에시드)에 많이 노출된다. 1회용 음식용기의 코팅재료, 전자제품 마감재, 화장품 등에도 사용되고 있어 사용회수를 줄이도록 노력한다. 사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을 경우에는 주로 1회용 용기를 사용하게 된다. 그럴 땐 딱딱한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배달하는 음식점을 이용하고, 집의 용기를 가져가 담아오면 유해물질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식품 뿐 아니라 의류, 주방용품, 화장품, 장난감 등 모든 제품에는 성분표시가 돼 있다. 유해성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구입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또한 벽지나 커튼, 가구 등에서 만만찮은 환경호르몬이 발생한다. 되도록 오래 쓰면 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 과한 냉난방을 하지 않는 것도 다음 세대를 위해 에너지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인체가 자연에 적응하도록 도와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엄마의 역할은 좋은 음식으로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이형미 씨.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며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단다.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가족들 앞에 내 보였을 때 뿌듯하고 자부심이 커지는 것 같아요. 사온 반찬과 가공·즉석조리 식품으로 7첩 반상을 차려내기 보다는 엄마의 정성이 묻어난 소박한 음식 한 가지가 훨씬 낫지 않겠어요?”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Tip 물품사기 전 꼭 확인해 보세요~
■플라스틱
비교적 안전한 플라스틱-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가급적 피해야할 플라스틱- PVC (염화폴리비닐), PS(폴리스티렌), PC(폴리카보네이트) 등
■화장품이나 개인용품
피해야 할 성분-파라벤, 프탈레이트, 콜타르, 페닐렌디아민, 아세트산납, 포름알데히드, 다이에탄올아민, 톨루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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