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동 성석초등학교에서 전원주택 단지 쪽으로 들어 가다보면 지붕에 ‘손두부’라고 써놓은 식당이 보인다. 손두부 전문점 두리원은 홍대 앞에 있던 맛집이다. ‘두부를 요리하는 정원’이라는 이름은 지난해 일산으로 이전해서야 제 뜻을 찾았다. 숲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붉은 지붕의 집에 너른 마당, 귀퉁이에서 꼬리치는 강아지들까지 참 편안한 풍경이다. 황명철 대표는 이곳에서 두부를 만든다. 흔하디흔한 반찬이 두부다. 그러나 두리원의 두부는 그 격을 한껏 높였다.
두부, 콩으로 만드는 예술
두리원의 두부는 탄력 있다. 순두부에서는 비린내는 가시고 고소함은 남도록 적절하게 끓인 콩물의 매끈한 느낌이 살아 있다. 제철 나물과 장아찌들로 차려진 밑반찬들은 조미료 없이 깊은 맛을 낸다. 모든 요리는 익숙한 듯 색다르다. 팬케이크로 착각하게 만드는 콩전이며, 탱글탱글 씹는 순간이 짜릿한 굴순두부는 또 어떤가. 보쌈 고기에 어우러진 두부 요리는 우리나라 원조 보쌈집보다 낫다는 것이 미식가들의 말이다.
두부는 원조 그대로이면서도 창의적인 요소가 살짝 살짝 숨어 있어 먹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이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드는 이는 대표 황명철 씨다. 그는 요리를 업으로 삼던 사람이 아니었다. 출판사 경영, 건설회사, 여러 일을 해왔다. 그러다 90년대 초, 외식업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물려 준 요리 솜씨
어머니는 충청도 종가의 며느리였다. 손님이 한번 들렀다 하면 삼사십 명은 기본이었다. 떡을 하면 온 마을에 돌려야 성이 찼고, 지나가던 거지가 구걸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한 상 차려 낼 만큼 손이 컸다. 채소 하나로도 많은 요리를 참 맛깔나게 만들었다. 요리하는 속도도 빨랐지만 맛으로도 칭찬이 자자했다. 나누고 베풀어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였다.
그런 어머니의 밥을 먹고 자란 네 형제는 미식가가 되었다. 외식 한번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맛없는 식당에 가면 아예 양념을 주문한다. 마늘이며 소금, 간장을 가지고 요리를 새로 탄생시켜 먹는다. 명절이면 부인들은 장만 봐 온다. 요리는 네 형제가 다 한다. 식구들이 만두를 좋아해 자주 만드는데, 밀가루 반죽부터 빚는 일 까지 25명이 이틀 먹을 분량을 넷이서 두 시간이면 뚝딱 해치운다. 그 중에서도 황명철 대표는 유독 맛감각이 뛰어났다. 요리를 창조하는 즐거움에 빠지면 신이 나서 일하는 사람이다.
하루 200그릇 팔던 홍대 맛집
1995년, 홍대에 두리원을 열었다. 황 대표의 부인 양옥자 씨는 “사람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밀어닥치는 손님들에게 낼 음식을 만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하루 평균 200그릇을 팔았다.
좋은 일도 많았다. 요리를 하는 일 자체가 즐거웠다. 어머니가 만들던 두부를 제대로 만들어 선보인다는 기쁜 마음으로 요리를 하니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맛집으로 소문내 주었다. 일본의 책자에 실리고, 외국인 손님들이 찾아와 맛보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세계의 맛집을 돌아다니던 외국인은 그의 요리를 먹고 자신의 한국 이름을 ‘이두부’라고 지었다. 어릴 때 한국으로 입양 됐다 성인이 돼 고국에 들른 이는 그의 두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할머니가 두부를 만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떳떳하게 만드는 정직한 두부요리
행복한 기억을 뒤로 하고 일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식당 많던 홍대 거리에는 이제 다국적 카페들로 북적거린다. 황 대표는 오히려 요즘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요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남의 집이 아닌 자기 집에서 맘 편히 펼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열하고 남을 속이면서 돈 버는 건 진정한 의미의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당하게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살라고 아이들에게도 늘 말하죠. 치사하게 눈 속여서 얄팍하게 하는 건 없으니까요.”
충주에서 계약 재배한 콩을 열두 시간 불려서, 손수 개발한 가마솥 제조기로 두부를 만든다. 간수로는 바닷물을 정화해 쓴다. 하루도 빠짐없이 몸으로 하는 일이다. 모든 요리를 직접 하지만 만들 때만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렇게 사는 게 더 괜찮은 것 같아요. 아이들 앞에서도 떳떳하고 후회스럽지도 않고.”
요즘이야 웰빙 열풍으로 많이 달라졌다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외식하면 고기가 최고인 줄 알고 서양 요리가 고급인 줄 안다. 황 대표는 그런 인식이 안타깝다. 두부야말로 잔칫날 만들어 먹던 우리의 전통 음식이 아닌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묵묵히 두부를 만든다.
생각 있는 식객은 오라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두리원에서 두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가마솥이 걸린 제조실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마솥은 위생과 안전성을 고려해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조리실도 밖에서 볼 수 있게 열린 구조로 만들었다.
“식자재와 환경을 모두 봐야 하는데 과정은 접어두고 결과인 음식만 보고 손님들은 왔다 가잖아요. 그런 게 속상하죠. 만들어지는 과정이 위생적인가, 믿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인가 따져 봐야 되는데 말이에요.”
황명철 대표는 “생각 있는 식객이 돼라”고 주장한다. 신선한 양질의 재료, 위생적인 제조 환경에서 만드는 음식인지 따져보고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반갑다. 멀리 분당에서 ‘이런 집은 어디에도 없다’며 찾아오는 이, 홍대 시절부터 단골이라며 일부러 먼 길을 돌아와 점심을 먹고 출근하는 사업가 등 한 번 인연을 맺은 손님들은 언제고 기어이 다시 찾아온다.
나의 요리는 나의 삶
황명철 대표에게 요리는 인생이다. 예술을 하듯 창의적으로 요리를 할 때면 언제나 표정이 즐겁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두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소박한 요리의 선을 유지하려고 한다. 반찬도 두부와 어울리게, 손님이 한 그릇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맛은 아이러니하게도 아가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집에서 밥 안 먹겠다고 보채던 돌쟁이 아가들이 두리원에 오면 어서 밥을 달라고 상을 두드린다. 비지찌개, 모두부, 두부전골, 모든 요리에 훼손되지 않은 콩의 맛을 담았다.
황 대표는 요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은 꿈도 갖고 있다. 그의 콩 요리를 전수할 제자들을 기르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그 꿈이 실현 된다면 제자 될 사람들은 인생 공부도 단단히 할 마음을 먹고 그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요리는 삶이니까.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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