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부쩍 세월 앞에 고개를 숙이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함께 할 1박 2일을 계획했었다. 그러다 봄바람이 부는 이제야 난생 처음 시어머니와 함께 떠나게 된 춘삼월의 여행. 며칠째 잠잠하던 추위가 샘이라도 내는 듯 세상의 만물을 꽁꽁 얼어붙게 했지만 그마저도 우리의 발목을 붙잡지는 못했다.
평상시 제법 돈독한 고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여인은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 따윈 안중에도 없이 단지 어디론가 떠난다는 그 설레임으로 가슴이 뛴다.
회문산 자락에 몸을 누이고 하늘의 별을 세다!
전주-순창-곡성을 연결하는 국도 27호선이 4차선으로 개통되면서 전주에서 회문산이 더 가까워졌다. 국도 27호선은 전남ㆍ북 산간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로 신호등이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설계되었다. 예전의 구불구불한 국도가 아닌 쭉쭉 뻗은 도로를 1시간 남짓 달리자 순창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회문산은 풍수지리상으로 우리나라 5대 명당 중 하나이다. 그래서 풍수장이들의 발길이 잦을 뿐만 아니라 산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묘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령문을 지나 회문산 명당 중턱에 자리 잡은 회문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조금 더 오르면 오늘밤 우리의 보금자리 산림문화휴양관이 보인다.
짐을 풀고 자연휴양림 산책에 나섰다. 조선 건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동학운동의 진원지이자 승전 깃발을 세웠던 곳이며, 한말에는 의병활동 근거지이기도 했던 회문산. 6.25 당시에는 남부군 사령부로 700여명의 빨치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회문산 역사관을 둘러보고 잘 닦여진 임도로 첫 번째 헬기장까지 발품도 팔아본다.
그리고 조금 일찍 준비한 오늘의 저녁 메뉴는 팥죽이다. “회문산에서 끊여먹는 팥죽 맛이 일품이여!”라는 한 지인의 조언대로 미리 삶아온 팥으로 새알팥죽을 만들었다. 물이 좋아서인지 팥죽 맛이 역시나 꿀맛이다.
숲속의 밤은 도시보다 일찍 찾아왔다. 우리는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세며 눈을 감는다.
한상 가득 자연을 담은 건강밥상과 이색체험
느지막이 아침을 챙겨먹고 완주군 구이면 안덕마을로 출발했다. 평상시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께 안덕마을의 한증막을 권하고 싶어서이다.
이 마을은 완주군의 도농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4개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만든 영농조합법인이다. 안덕마을은 다양한 체험거리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시어머니와 오붓이 민속한증막(063-221-4065, 새봄맞이 할인행사로 월화수목 오전 12시 이전 방문시 이용료 50% 할인-4,000원, 3월까지)에서 피로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풀어 보고 싶다. 때마침 지역주민을 위한 건강교실도 열리고 있어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어도 본다.
민속한증막은 본래 한의원이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던 한증막 시설을 마을에서 운영해 관광객 유치 차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느릅나무 껍질과 솔뿌리, 한약재 달인 물을 황토방 내벽에 덧발라 좋은 성분들이 벽에서 빠져나와 찜질 약효를 더해준다고 한다.
방울방울 맺히는 땀방울에 지쳐 시원한 곳이 떠오를 때쯤 한증막 뒤쪽에 있는 동굴을 찾아보았다. 예전의 폐금광을 활용해 만든 냉찜질 장소인데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부드러운 불빛과 나무 벤취까지 더해져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한증막을 나와 2층 계단을 올라가니 완주군의 청정 자연으로 만든 웰빙 식단이 기다리고 있다. 20가지는 너머 됨직한 갖가지 나물부터 부침개, 돼지불고기 등 몸에 좋은 건강밥상(웰빙뷔페 1인 8,000원)이다.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 당신도 영락없는 여자입니다!
“아이고, 거시기 어메 밥 한번 얻어먹기가 하늘에 별따기여. 당신이 한 밥은 맛이 없다고 밥을 안 하면 설거지라도 해야 할 것 아녀?”라며 동네 어르신 흉을 본다. 어렸을 적부터 단짝 동무로 지내온 동네 친구에 대한 질책이다.
요즘 시골에는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경로당 운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여가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로이 사는 어르신들이 이웃들과 함께 정다운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인데. 이렇듯 농촌마을의 유일한 복지시설이나 다름없는 경로당에서 동네사람들이 거의 숙식을 해결하다시피 하니까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쌓일 수밖에.
시어머니의 말에 호응을 해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자는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 둥글지 못하고 조금 모난 자식 걱정도 풀어 헤치는 시어머니.
또 시어머니는 “니 애비 떼어 놓고 너랑 와서 이렇게 좋다. 밥도 안하고 편안한 밥 먹어서 좋고 내맘대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좋구나. 늙은이가 좋은 곳에 와서 맑은 공기 마시고 가서 좋고 너랑 함께 와서 더 더욱 좋구나!”라고 말한다.
14년 전 리포터가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뵌 날, ‘참 고우시다!’라는 생각을 했거늘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깊게 파인 주름도 세월을 비켜가진 못했다.
내 나이 마흔이거늘, 며느리가 해 주는 밥 한 그릇에 감사해 하고 대견해 하시는 시어머니. 아무리 나이 먹어도 부모 눈에 자식은 어린아이와 같다더니... 시어머니 앞에 리포터는 아직도 스무살 처녀와 같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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