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여고 3학년 송솔입

상처 난 마음 다독이는 심리상담가를 꿈꾸다

지역내일 2012-03-14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나가는 남양주 신망애복지재단에서 한 장애인과의 만남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말하는 송솔입양. “전직 수영 선수였는데 갑자기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20대 남자 분이었어요.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의 나락에 빠져 살다 어느 순간 ‘죽음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며 나더러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뚜렷한 목표를 세워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라며 찬찬히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이야기해 주는데 눈물이 많이 났어요.” 고1 겨울방학 때 이후로 송양은 장래 꿈, 진로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심리 상담가’라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이 준 ‘아픈 가르침’
 송양은 제주도에서 중3 때까지 살았다. 제주 바다와 오름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섬사람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며 자랐다. “고교 입학 전까지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요.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뛰놀며 지냈지요. 자유로운 영혼이었죠.(웃음)” 공부도 곧잘 했다. 스스로 학습법을 혼자 터득해 나가며 공부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그 무렵엔 소설, 철학, 시집 등 온갖 종류의 책을 끼고 살았는데 그때 쌓은 독서력이 지금까지도 자양분이 되고 있다.
 송양의 부모님은 모두 예술가다. 아버지는 조각가, 어머니는 테마파크 디자이너라 어릴 때부터 그는 ‘예술’과 호흡하며 자랐다. 제주도의 멋진 자연과 자유스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송양은 모나지 않고 남을 감싸줄 아는 넉넉한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가정사의 아픔도 솔입양이 일찍 철드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성격이라 많이 다투셨죠. 중학생 때 갈라지셨어요.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을 돌보며 서울에 계신 엄마와 떨어져 살았죠. 집안일도 스스로 해결하며 학교를 다녔어요.”


 열린 귀 가진 ‘심리상담가’가 꿈
  아픈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송 양은 그 당시 친구가 많은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복잡한 가정사, 고민 등을 친구들끼리 솔직하게 털어 놓는 과정에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줄 아는 나만의 장점을 발견하게 되었죠.” 일찍 철인 듯 탓에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고 친구들의 고민 상담이 줄을 이었다.
 또래에 비해 속마음을 진솔하게 들어줄 수 있는 ‘열린 귀’와 소통?공감 능력을 타고난 덕분이다. 심리상담가로 진로를 정하자 친구들도 많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귀띔한다. 특히 부모님의 ‘예술가 피’를 물려받은 덕분에 미술에 재주가 많은 그는 미술과 상담을 접목한 미술 심리 쪽에도 관심이 많다.
  노인복지센터에서 치매 노인을 위한 말벗도우미 자원봉사를 할 때도 유독 송양은 인기가 좋았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자신의 딸과 손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려주며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나를 꼭 잡고 눈물 흘리는 할머니를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 보였어요.” 최근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학생들끼리 단체로 봉사 활동을 나가도 장애인들이 솔입이를 많이 따라요. 사람을 끄는 매력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독거릴 줄 아는 학생입니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참여해 신망애복지재단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어요.” 꾸준히 지켜본 이윤찬 창덕여고 교사가 덧붙인다.
 “내 롤모델은 엄마예요. 중학교 때는 잠시 섭섭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지만 테마파크 디자이너로 홀로 서울에 올라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 멋지고 자극도 되요. 그러면서 바쁜 시간 쪼개 나와 동생 뒷바라지 하는 엄마의 짠한 마음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담담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서울로 전학 온 뒤 낯선 환경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빡빡한 일상에 적응을 못해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착실하게 고3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자부심
 송양은 독립유공자 후손이다. 친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징용에 반대해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다 투옥되기도 한 독립투사다. “일찍 돌아가셔 내 기억에는 없어요. 하지만 아빠가 어릴 때부터 커다란 할아버지 사진과 각종 표창, 훈장을 집에 걸어놓고 항일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어요.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혜택을 받고 자란만큼 꼭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하셨어요.” 삼일절을 맞아 얼마 전에는 독립유공자 후손들끼리 모여 서대문형무소, 유관순 생가, 독립기념관을 둘러보며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여산송가 정가공파 36대 손 송솔입. 아빠는 내가 꼬맹이 때부터 늘 할아버지 사진 앞에서 외우게 하셨어요. ‘나의 뿌리’를 기억하고 줏대 있게 자라라는 의미였지요.” 심리상담가를 꿈꾸는 송양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고3의 긴 터널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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