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이는 휴일 날 오후, 그 기운에 이끌려 어디론가 길을 나선다. 움직이지 않고 집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라 큰 계획없이 전주시민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모악산을 찾았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 왔을까?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모악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건강한 얼굴들이다.
모악산은 어머니산, 회문산은 아버지산
전주역을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나자 산 정상에 오늘의 목적지 모악산의 철탑이 보인다. 하지만 산을 오르기도 전에 산을 찾은 수많은 인파에 먼저 놀란다. 동행한 아이들도 자신보다 어린 산행인을 보고서는 기가 눌려 튀어나온 입이 쏙 들어가 버렸다.
모악산을 오르는 길은 금산사로 오르는 길, 중인리로 오르는 길, 구이 도립미술관에서 오르는 길 등 다양하지만 오늘은 상춘객의 미소에서 봄기운도 읽을 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구이 길을 선택했다.
도립미술관 주차장을 출발해 대원사, 수왕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로 3시간정도 소요되며,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악산(794m)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아래 ‘쉰길바위’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모악(母岳)산이라 이름 지었다. 실제로 풍수지리에서도 음기와 양기를 따져 모악산을 어머니산, 회문산을 아버지산이라 하기도 한다.
대원사, 수왕사를 지나 정상을 향해 오르다!
아이들과 산행을 하다보면 “엄마!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해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산과 달리 리포터는 모악산에 오를때면 그 구분을 확실히 할 수 있다. 대원사까지 오르는 길 3분의 1, 수왕사까지 오르는 길 3분의 1, 그리고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 3분의 1을 지나면 정상에 도달한다고.
건조한 날씨 탓에 등산로가 잘 다져져 있어 출발이 순조롭다. 뛰다시피 30분 정도를 오르자 대원사가 눈앞에 보인다. 대원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5교 가운데 하나인 열반종을 세운 진덕화상의 제자였던 일승·심정·대원 등 세 승려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매년 4월 ‘모악산진달래축제’가 열릴 때는 화전과 농주가 무료로 제공이 된다고 하니 다시 한번 찾아볼 요량이다.
대원사를 지나 오늘의 하이라이트, 경사가 크게 진 돌계단길을 오르자 쉼터가 보인다. 산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해맑아 보인다. 그리고 곧이어 수왕사가 보이는 또 다른 쉼터에 들어서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 그려진다. ‘수고한 그대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며 나를 유혹하지만 단단히 뿌리치고 수왕사에 잠시 들러본다. 그럴싸한 절채 하나 없이 건물 두동이 서 있고 그 가운데 ‘군인들이 먹는 물’이라는 글귀와 함께 약수가 줄줄 흐르고 있다.
휴일 산 정상에 나와 나란히 선 당신은 부지런하오!
마지막길이 가장 쉬운길이라며 아이들을 재촉했건만 오늘의 산행은 예상 밖이다. 산중턱까지 고운 봄이 오고 있었다면 산 정상에는 떠나느 거친 겨울의 기운이 역력하다.
겨울동안 얼었던 눈과 얼음이 녹아 길이 질퍽질퍽하고 미끄럽기 그지없다. 가방 속 아이젠을 꺼내어 한 켤레가 아닌 한쪽씩을 착용하고 몸을 의지했다.
길이 미끄러운 것보다 바지로 튀는 흙탕물과 넘어져 더러워진 손 때문에 아이들의 입에서 연신 볼멘소리가 새어 나온다.
“날을 잘 못 잡았어요. 길만 좋으면 식은 죽먹기 일텐데..아무래도 신발에 물이 들어간 것 같아요...”
여느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예상에도 없던 복병을 만난 얼굴이다.
정상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전망대를 차지하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족도 기념사진 한 장을 추억으로 담고 뒤를 돌아서자 몇몇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반갑다. 산을 찾는 이는 모두 호인이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산에서 지인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와 동시에 오늘 이 자리에 나와 함께 있는 당신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슴속에 새기며 하산을 한다.
하산길에 된장에 고추하나 푹 찍어 함께 한 막걸리의 여운이 입속에 가득하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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