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아산 권곡초등학교 제8회 졸업식은 특별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특별상을 받은 76세 한상순 할머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씨는 만학도의 열정을 불태웠고, 결국 빛나는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 한상순 할머니가 졸업선물로 받은 모자와 목도리를 하고 롤링페이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6년 전, 학교 앞에서 살던 한씨는 평생소원인 배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몇 번을 망설였다. 교문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길 반복한 어느 날, 한상순 할머니는 교장실로 찾아갔다. “나 학교 다닐 수 있어유?”
한씨는 마침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이제한이 있었으나 당시 신부자 교장의 배려로 그는 손자 또래들과 나란히 교실 책상에 앉았다.
한씨의 부모는 다섯이나 되는 딸은 학교 근처에도 보내지 않았고 아들만 가르쳤다. 결혼해서도 배움에 목말랐지만 “장사하고, 자식 키운다고 공부는커녕 머리에 하얀 서리만 내렸다”며 당시를 떠올리는 한상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글을 제대로 몰랐던 한씨는 장사할 때 누가 외상을 얼마나 했는지, 언제 갚기로 했는지를 머릿속에 담아뒀다. 한씨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조차 몰랐다.
눈물로 받은 6년 개근상
나이 많은 학생이라고 배려해 준 아이들과 담임들 덕분에 학교생활은 순탄했다. 아이들과 똑같이 청소하고 숙제하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3학년 때 그는 많이 울었다. 너무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려고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이메일을 썼다. 아들은 “엄마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내년엔 꼭 좋은 선생님 만나게 기도할게요”라며 만류했다.
통지표도 받지 못한 한씨는 울음을 삼키며 4학년으로 진급했다. “선생님은 다 좋은 줄 알았다. 근데 선생님이 무시하니까 애들도 무시하더라. 너무 서러웠다”며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이 사실을 알게 된 강사길 교장이 할머니를 가르칠 교사를 자원 받았다. 한씨는 새 담임이 된 이수교 교사와 재미난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용연마을로 이사 간 뒤 교통이 매우 불편해져 등교만 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한겨울 빙판길도 마다않고 학교를 다닌 한상순 할머니는 6년 개근상을 받았다.
최고의 졸업선물
6학년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날 할머니는 빙판길을 나서다 버스를 놓쳤다. 걱정이 된 장 군 담임교사는 전화를 했고, 할머니는 부랴부랴 교정에 들어섰다.
우르르 몰려나온 아이들이 할머니를 교실로 이끌었다. 교실로 들어선 순간 폭죽이 터졌다. 아이들은 “할머니! 졸업 축하해요”라고 함성을 질렀다. 교실은 순식간에 졸업축하장으로 변했고 할머니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담았다.
“이거, 장 군 선생님이 주신거야. 이건 아이들이 준 거고….” 분홍모자와 목도리, 편지와 롤링페이퍼를 보여주는 할머니는 6학년 어린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내 인생의 목표는 지구촌 곳곳에 선교센터를 짓는 거야. 난 배우고 싶은 소원을 이뤘거든.”
“애들이 학교 다니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매일 일기를 쓰는 한상순 할머니의 함박웃음 속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있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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