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선생님과 상담하고 난 아이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속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읽어낸다고 해서 족집게 도사, 용한 점쟁이라고 그래요.” 강동구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 관계자가 인터뷰에 앞서 슬쩍 귀띔한다. 조근조근한 말투, 푸근한 인상의 윤영희 중등상담팀장(58세). 마음속에 생채기 난 왕따, 문제아, 비행청소년들을 가슴으로 품어주는 ‘상담 고수’다.
마음 상처 읽어내는 ‘족집게 도사’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아이랑 엄마가 함께 센터를 찾아와요. 표면적 이유는 공부 때문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정불화, 학교부적응, 게임중독 등 다양한 문제들이 뒤섞여 있어요.” 17년 상담 경력의 윤 팀장의 설명이다.
상담의 1차 관문은 정확한 진단. 그래야 제재로 된 치유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첫 만남의 어색한 자리에서 학생과 학부모 모두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는 도형심리검사를 활용한다. “그동안 현장에서 2000명 이상을 적용해 보니 동그라미, 네모 같은 도형을 그려 심리를 읽어내는 도형검사가 정확하더군요.” 학생 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검사를 받도록 한다. 모든 걸 ‘엄마주도’로 세팅해 놓고 우리 아이는 ‘자기주도학습’이 안 된다며 처방전을 원하는 부모들에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어서다.
딸 셋을 둔 그는 사교육 도움 없이 모두 다 대학에 합격시켰고 학비도 딸들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 인생’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덕분이다.
그 앞에서 통곡하는 학생과 학부모
“가수가 되겠다는 중2 아들을 2년간 뜯어말리다 저를 찾아왔어요. 첫 상담을 마친 후 거짓말처럼 남학생 입에서 ‘엄마 나 가수 안 할래’ 소리가 나왔어요. 엄마도 깜짝 놀랐죠.” 비결이 궁금했다. “심리검사를 해보니 집중력, 끈기가 부족했어요. 아이도 본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데 사춘기 반항심이 발동해 엄마와 대립각을 세웠던 거지요. 인기 가수가 되기까지 인내해야 할 과정을 들려주며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차분히 물었더니 아이가 고개를 저어요.” 그 뒤 여러 차례 상담을 거치면서 이 학생은 내팽개친 교과서를 다시 들었다.
이처럼 자식과 갈등에 지쳐 벼랑 끝에 선 부모들이 그를 찾는다. 상처 난 마음을 다독거리는 재주를 타고난 그 앞에서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나간다. 윤 팀장 같은 노련한 상담가들 덕분에 자기주도학습센터에 SOS를 보내는 신청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바쁜 틈틈이 그는 상담 관련 전문 교육을 빼놓지 않고 공부하며 내공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심리상담사, 도형심리상담사, 비행청소년상담사에 이어 얼마 전에는 자살예방교육사 자격증까지 땄다.
상담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려준다. 2남3녀의 막내로,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고 9살 무렵에는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셨다. “늘 보호받고 자라 의존적인 성격에 아빠가 없다는 콤플렉스까지 더해져 자아를 억누르며 겉보기에는 ‘얌전하고 착한아이’로 컸어요.” 속마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그에게 교회가 큰 힘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상담도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마흔 살 무렵까지는 ‘상담’과 별 인연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후대(後代) 지기’를 꿈꾸다
“중학생이었던 둘째딸이 학교 CA반 명예교사로 활동해 보라고 권했어요. 그게 계기가 됐어요.” 각 반의 문제아 50여명을 모아 놓아놓은 CA반을 맡게 되었다. 학생 한명 한명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집까지 찾아가 부모님 상담까지 자청하며 꿈이 없던 아이들과 함께 ‘비전’을 그려나갔다. 무보수 자원봉사였지만 그에게 잠재되어 있던 ‘상담가 본능’이 발휘되자 입소문 나면서 성내중, 석촌중 상담명예교사, 서울보호관찰소 상담특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지금도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온갖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을 만나며 윤 팀장은 학교 안 문제아가 사회의 범죄자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예전엔 문제 가정에서 문제아가 나왔다면 요즘엔 평범한 중산층 가정 아이들까지 범죄에 가담해요. 절도범으로 붙잡혀도 별 죄의식이 없어요. 노동의 가치를 모른 채 돈 씀씀이만 커졌죠.”
‘상식’을 배우지 못한 채 몸뚱이만 자란 아이들을 구치소로 면회 다니며 마음을 다독거렸다. “면회시간 내내 영치금과 간식 넣어 달라며 어리광부리던 남학생이 기억나네요. 막상 면회 마치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선생님 편지해주세요’ 라고 하더군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거지요. 폭풍의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은 20대 청년이 되어 미국에서 레스토랑 운영하며 잘 살고 있어요.”
학생들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윤 팀장은 스스로 ‘후대(後代) 지기’를 자처한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한명의 아이라도 더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요. 공공기관인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가 생겨 더 많은 아이들과 만날 수 있으니 도리어 내가 고맙지요.” 인터뷰 말미에 무심히 뱉은 그의 속마음이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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