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7번 게이트로 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갤러리 바움’. 독일어로 나무라는 뜻을 가진 이름대로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건물 앞 단풍나무와 나무 테크가 눈길을 끈다.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 ‘갤러리 바움’은 장신구 작가 이정규의 작업실이자 전시 공간이다.
-국내에 아트주얼리라는 장르를 뿌리내린 현대장신구 제 1세대 작가
이정규 작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공예, 그 중에서도 생소한 아트주얼리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천연원석이 갖고 있는 색감과 질감에 끌렸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1979년, 작가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포르츠하임 조형대학에서 장신구와 기물디자인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선 교수는 주제를 주고 작품을 전개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작품의 기술적인 면은 마스터가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바우하우스식 수업을 받았다. 졸업 후 곧바로 프랑스로 건너간 작가는 파리국립응용미술대학교에서 금속조형학을 전공했다.
“독일은 기초조형훈련에 엄격하고 학제기간이 길어요. 독일에선 통합적인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특히 포르츠하임은 작은 도시지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장신구를 전시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장신구 뮤지엄이 있는 곳이죠. 포르츠하임의 장신구 문화는 지금도 제 작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교과목이나 시스템이 옛날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자유로움, 예술적 감각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독일에서 기본을 충실히 익혔다면, 프랑스에서는 예술적 자양분을 얻었다고 할까.”
1989년 귀국 후 현대장신구 유학 1세대 작가로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당시에는 장신구 하면 보석이란 개념이 강했던 시절, 현대장신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예술성이 강조된 장신구 전시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작가는 “장신구도 예술품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금까지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그런 열정 덕분에 지금은 그림을 컬렉션 하듯 장신구도 작품으로 컬렉션 하는 마니아도 많아졌다. “값비싼 보석보다 ‘이정규 장신구’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같이 교감해주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작가, 장신구의 진화를 위해 그는 작업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작업 중에 ‘작품’이 나오지, 작업을 하지 않고 쉬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자연원석이 가진 멋을 거스르지 않는, 절제된 미감을 추구하다
장신구 재료 중에서도 천연원석이 주는 색감이나 질감이 매력적이라는 이정규 작가. 그는 호박이나 오닉스, 재스퍼, 상아 등 원석 자체의 물성을 중시한 디자인을 우선한다. “재료가 가진 멋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자체의 충만한 느낌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늘 화두지요. 재료 자체가 충만하다면 군더더기가 붙을 필요가 없지요.”
또 하나, 작가는 원석을 사용할 때 가장 좋은 부분을 선택한다. 아무리 좋은 원석이라 해도 똑같은 질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때로 최상의 것을 선택하기 위해 나머지를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커팅 면에 따라 색감의 차이가 나는 원석이 있어요. 어쩌면 아주 작은 차이일수도 있지만 이 미묘한 차이가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죠.” 자연원석이 가진 멋을 거스르지 않는 절제된 미감, 이정규 작가의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다.
-장신구는 움직이는 갤러리, 나만의 개성과 안목을 보여주는 도구
장신구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하는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방장관이 중요 회담이나 외교석상에서 다양한 브로치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듯 장신구는 착용한 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만든 작가와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과의 교감, 즉 작가와의 소통을 강조한다. “그림은 전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지요. 하지만 장신구는 착용자가 가는 곳마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 때마다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은 그것을 빚은 작가의 정서를 전달하는 ‘움직이는 갤러리’라 할 수 있지요.” 꾸미는 기능에만 충실한 악세서리라는 틀을 깨고 “장신구는 생활 속에 들어온 예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때로는 사비를 들여가며 장신구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이정규 작가. 값비싼 보석만을 선호하는 시각을 바꿔 자연원석과 다양한 오브제로 만든 장신구 하나가 그 사람의 개성과 감각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대중의 안목을 넓혀가는 역할, 그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딸에게 꼭 하나 주고 싶은 〈브로치+노리개 展〉
일상의 모든 생각이나 행동,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작품에 투영된다는 작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키워나가기 위해 그는 늘 자연과 환경, 그리고 한국 전통의 미를 탐색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 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빚은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일까. 이정규 작가의 장신구는 그의 모습처럼 단아하고 자연스러운 선이 아름답다. 혼사를 앞둔 딸에게 꼭 하나 주고 싶은 노리개와 브로치, 이정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2012 새해맞이 브로치+노리개 展〉이 2월 29일까지 갤러리 바움에서 열린다. 한국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이정규 작가의 장신구, 이번 주말 갤러리 바움에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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