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장면 하나.
“제가 좀 걱정이 되요.”
“뭐가요?”
“제가 실수할까 봐요.”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 거예요.” “한 번 해봅시다.” 그리고 영화 ‘여인의 향기’ OST중 가장 유명한 ‘Por una Cabeza’가 흘러나오며 퇴역장교와 아리따운 여인은 매혹적인 탱고를 선사한다.
익숙한 장면 둘.
단란한 가정과 안정된 직장을 가졌으나 왠지 모를 공허감을 느끼던 40대 샐러리맨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 춤에 대한 주인공의 열정은 슬럼프에 빠져 춤을 추는 의미를 잃어버렸던 선생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지막 장면, 선생이 손을 내민다.
“shall we dance?” “right.”
마음을 닫고 있던 퇴역장교에게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무기력했던 가장에게 활기를 찾아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춤이었다. 춤에는 몸을 움직여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마법이 있는 걸까? 일요일 저녁, ‘탱고’의 매력에 흠뻑 취해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탱고동호회 뿌땅 회원들
탱고동호회 ‘뿌땅’
탱고는 19세기 후반 고향을 등진 가난한 유럽 이민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남쪽에 있는 항구도시 ‘라보카’의 부두 노동자들이 밤만 되면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반도네온(아코디언과 같은 족의 악기)에 맞춰 춤을 추었던 것이 탱고의 시작이다.
탱고하면 가장 먼저 두 남녀의 매혹적인 자태가 떠오른다. 고혹적인 선율에 맞춰 절도 있는 몸짓과 표정으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계처럼 보인다. 적어도 몸치인 리포터에게는 그렇다는 말이고 탱고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직접 그 낭만을 느껴보고 싶은 춤인 게다.
탱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뿌땅’은 ‘puerto tango’의 줄임말로 ‘라틴속으로’라는 아르헨티나 탱고 카페의 부산 동호회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150명 정도다. 일요일 저녁 7시 정기 모임, 서면에 위치한 탱고 전용바에 회원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음악이 흐르고 탱고 전용 신발로 갈아 신은 회원들은 밀롱가(춤을 출 수 있는 공간)로 들어가 능숙하게 탱고를 췄다.
정기모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탱고를 접한 뒤 탱고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는 동호회 매니저 이상득(48)씨는 “커플로 추는 춤이기에 서로 위안이 되고 따뜻한 교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탱고의 매력으로 꼽았다. “탱고의 어원은 ‘다가가다, 어루만지다’의 의미인 라틴어 tangere(땅게르)에서 왔어요. 내가 먼저 다가가서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춤이지요. 혼자서 아무리 잘 춘다한들 소용없어요. 서로의 멘탈이 중요하지요”라고 말한다.
부산 유일의 탱고 전용바인 ‘cafe de tango’의 이정희(33) 대표는 “처음에는 전용바가 없어 살사바를 빌렸어요. 그런데 바닥이 달라 불편하던 차에 전용바를 열게 됐다”고 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인생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라며 탱고를 잘 출 수 있는 비결이 있냐는 질문에 “마음을 여는 만큼 잘 추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화려한 기술보다는 역시나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
“탱고, 쉽지 않아요”라고 운을 뗀 남범원(47)씨는 “동호회에서는 서로 품앗이로 가르쳐주는데 20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단 2명만이 남아있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금 강조했다.
잠시 춰보겠냐는 뿌땅 매니저의 제안에 겁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아주 잠깐 매니저의 리드대로 발을 몇 번 옮겼다. 마음은 땅게라(탱고를 추는 여자)인데 몸은 역시나 어정쩡이다. 시간이 흐르고 밀롱가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진지하게 탱고를 추는 사람들 사이로 끊임없이 애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줄 것만 같았다. “shall we tango?”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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