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
“그럼 두 번째는?” “...”
“근대사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어...조선 후긴가...?”
딸아이는 5학년. 역사를 배웠건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단다. 리포터 역시 제대로 아는 것이 없기는 매한가지. 몇 년 동안 역사를 배웠건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방학 끝 무렵 부산근대역사관을 방문했다.
부산근대역사관 전경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시작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지어진 건물이다. 최초에는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인 1949년부터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사용됐다.
이후 부산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요구로 미문화원이 철수하고, 1999년 대한민국정부로 반환된 것을 그 해 6월 부산시가 인수했다. 이 건물이 침략의 상징이었던 만큼 시민들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조성해 2003년 7월 3일 문을 열었다. 역사관에서는 주말과 공휴일 11시·2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부산관련 근현대사 유물과 입체 전시물 전시돼 있어
부산근대역사관은 부산관련 근현대사 유물 200여점을 비롯해 영상물, 모형물 등의 입체적인 전시물이 2·3층에 전시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부산의 근대 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개항 후 어촌에서 근대도시로 변한 부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개항 이후 무역을 한다는 미명 아래 서서히 부산을 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은 결국 침략과 수탈을 시작했다.
제2전시실에는 일본이 조선의 경제를 지배할 목적으로 1908년 설립한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자료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시작된 ‘한미관계’의 역사가 짧게 소개되어 있다.
전시실 한 쪽 벽면에는 위안부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해설사로부터 “세계 전쟁사를 돌아봤을 때 유일하게 여성을 위안부로 데리고 다녔던 나라는 일본뿐”이라면서 “우리나라 여성뿐만 아니라 일본과 필리핀 여성도 위안부로 전쟁에 끌려 다녔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사과 한 마디 없는 일본정부다. “역사관에는 종종 일본인들도 들리는데 위안부나 한국인 징병에 대해 설명하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원래 역사라는 것이 자기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서술하다보니 불리한 내용은 축소·미화하기 마련”이라는 말에 자주 국력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부산의 근대거리 모형물. 모형가게와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부산의 근대거리’ 모형관
3층 전시실에는 ‘부산의 근대거리’를 조성해 놓았다. 전차모형과 일제강점기 대청동 거리를 재현해 당시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다. 창원에서 친구와 놀러왔다는 류귀중(28)씨는 “TV에서 부산의 원도심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부산을 찾았어요. 보수동 책방 골목을 둘러본 뒤 역사관을 찾았는데 설명 없이 둘러봐서 그런지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근대 거리가 잘 꾸며져 있어 흥미롭다”고 했다. 딸아이와 신랑은 모형 전차에 앉아 예전 거리 모습이 담긴 영상을 꽤 오랫동안 지켜봤다.
우리나라 근대사는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가슴 아픈 역사다. 격랑의 소용돌이에서 돌고 돌아 지금 우리 품으로 돌아온 근대역사관. 잊을 수 없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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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에서는 ‘사회교과서 속 부산근대여행’이라는 주제로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 일정과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역사관 근처에는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를 기념하여 세운 기념관인 ‘백산기념관’과 부산시 ‘임시수도기념관’이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1926년 경상남도 도청 건립과 함께 도지사 관사로 지어졌으며, 임시수도기간(1950~53년)에는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되었던 장소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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