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정을 나누고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즐거워야 할 명절이 슬픈 사람들도 있다. 파지를 주워 차례상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눈물 어리고 가슴시린 사연을 들어봤다.
“파지라도 팔아서 명절 준비해야”
월평동에 사는 김영자씨(가명·72)는 7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3년째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이 이혼을 한데다 당뇨병과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는 20여만 원으로 한 달을 생활한다. 혼자 생활하기에도 빠듯한 돈으로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인 손자들까지 챙겨야 하니 생활비에 항상 허덕인다.
김 씨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침이면 파지를 주우러 나선다. 파지를 팔아 김 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하루 평균 2000~3000원 정도다. 추운 날씨에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하지만 이번 달에 설날이 있어 더 많은 파지를 주워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김 씨는 “명절인데 손자들 양말이라도 사주고, 병원에 있는 아들한테 떡국이라도 먹이려면 부지런히 돈 벌어야지”라며 발길을 재촉했다.
“내 형편에 무슨 고향을…가더라도 짐이지”
송기성(가명·74·삼성동)씨는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외관, 난장판 같은 부엌, 1.5평 남짓한 방 한 칸에서 생활한다.
방에는 오랫동안 빨지 않아 시커먼 때가 절어 있는 담요가 전기장판위에 깔려있다. 한쪽으로 TV, 선풍기, 밥솥,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송 씨는 이곳에서 15년째 홀로 생활하고 있다.
말이 어눌한 송 씨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았다. 20만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지만 전기세와 수도세, 집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시집간 딸도 형편이 어려워 송 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송 씨는 딸 얼굴을 1년에 한번 볼까 말까다. 송 씨는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는다.
“내 형편에 어떻게 고향을 가. 가더라도 짐이지. 못 가본지 여러 해 됐어”라며 허공을 바라보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송 씨는 딸이 시집간 후로 혼자 명절을 보냈다. 이번 명절에는 딸과 손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딸을 만나면 주려고 일년 동안 파지와 빈병을 주워 판 돈 20만원을 준비해뒀다.
“외롭지만 가족들 만나고 싶지 않아”
유상현(가명·74)씨는 10년째 대전역 대합실과 광장을 무대로 생활하는 노숙자다.
잠은 역 뒤편 철거촌에 있는 비닐과 종이상자를 접어 만든 집(?)에서 잔다.
다 해어진 신발, 때가 반질반질한 겉옷, 엉켜있는 기다란 수염, 언제 씻었는지 모를 정도로 잔뜩 때가 끼어 있는 손, 유 씨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대합실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우발적 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다녀온 유 씨는 가족한테 버림받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차가운 시선을 피해 집을 나왔지만 유 씨가 갈 곳은 없었다.
노숙자의 길을 걷게 된 유 씨는 무료급식소나 동냥한 돈으로 끼니를 때운다.
가족의 곁을 떠난 지 벌써 10년. 가족과 연락도 닿지 않는다.
가족의 손을 잡고 선물꾸러미를 든 귀성객들을 보는 유 씨의 가슴은 미어진다.
명절이면 가족이 더 보고 싶다며 “찾으면 만날 수 있겠지만 내가 무슨 낯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보겠어. 난 살인자인데…”라며 잠시 눈물을 보였다.
“명절? 그런 거 잊고 산지 오래여. 명절이고 뭐고 그냥 자다고 저 세상 갔으면 좋겠어.”
“공동 차례상 앞에서라도 부모님께 절 올려야죠”
대전의 한 홈리스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희철씨(가명·52)씨.
젊은 시절부터 식당 허드렛일을 했던 김 씨는 월급 대부분을 술값으로 탕진했다. 형제들은 술에 젖어 사는 김 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김 씨를 이해하고 안아줬던 부모님이 세상을 뜨자 집을 뛰쳐나왔다. 벌써 13년이 흘렀다.
그 후로 홈리스족이 되어 10년이 넘도록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돈이 필요하면 식당 허드렛일을 하거나 막노동을 했다. 오십이 넘도록 안정된 일자리와 집이 없다보니 가족들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홈리스센터와 월세방을 전전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창피해서다.
그래도 명절이면 가족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려울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부모님 생각도 간절하다. 이번 설에는 홈리스센터에서 마련해 주는 공동 차례상 앞에서라도 부모님께 절을 올릴 생각이다.
“엄마, 설날에 아빠가 찾아오면 어떡하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두 아이를 데리고 ‘여성의 집’에 머물고 있는 박숙희(가명? 43)씨에게 설은 ‘남들의 명절’이다.
결혼 후 십년 째 계속되는 폭력으로 박 씨의 몸은 더 이상 멍들 곳도 없다. 세뱃돈을 쥐어줘야 할 아빠가 자식들에게 공포라는 현실이 박 씨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박 씨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성들이 아이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입소 시설은 대전에 두 곳 밖에 없다. 그나마 6개월이 지나면 다른 입소자를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박 씨 또한 설이 지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 어디로 가서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할 지 막막하다.
이은희 원장은 “설날에 입소자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조촐하게 떡국을 끓여 먹으며 보낸다”며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귀성행렬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진숙 안시언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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