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포낙보청기, 펄청각재활연구소 배미란 청각학박사
필자는 인공와우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를만났습니다. 아이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묻습니다. ‘수술하면 안보이나요? 보청기처럼 이제 귀에 거는 것은 없는 거죠?’.‘이런! 인공와우는 보청기처럼 귀에 걸어야 하고 머리에 붙이는 장치도 있단다’라고 솔직하게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아이도 엄마도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머릿속에 장치를 삽입하니까 안보일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건 싫어요’. 하며 아이가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은 시력이 좋지 않으면 안경을 씁니다. 청력이 좋지 않으면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인공와우 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 걸을 수 없다면 휠체어나 목발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보장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서는 아직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못하며 직접 그 장애의 대상인 우리들도 남들 눈에 드러나는 나의 다른 모습이 부끄럽고 싫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필자는 오체불만족으로 유명한 호주의 닉부이치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강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그 혼란스럽던 기억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양팔 양다리가 생기다 말아서 말 그대로 몸통뿐인 젊은 청년은 너무 자신 있게 자기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오히려 건강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도 여러 차례 자신을 비관하고 생을 마감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이겨내게 한 한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성서의 한 구절 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새 해가 밝았습니다. 사람들은 또 다른 희망에 부풀어 새로운 꿈을 꿉니다. 국회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우의 권리를 보호하네 어쩌네 법이 통과되었네 시끄럽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반갑지만 이번에도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실제적인 인권이 보장되기를 바랍니다. 장애를 손가락질 받는 것이 두려워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 한 켠에서 불편함을 이겨내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웃을 봅니다. 우리는 그 이웃들이 자신을 불편함에 당당해 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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