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낙엽 쌓인 산에서 가을을 떠나보내다

지역내일 2011-12-16 (수정 2011-12-16 오전 9:10:55)

11월 마지막 주말. 속리산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의아한 반응들이었다. 이미 단풍이 다져버린 산.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이번 여행 동행인들의 시간대를 맞추다 보니 결정된 날짜였을 뿐.
역시나 오색찬란한 단풍은 오간데 없고 색 바랜 잎들만 쓸쓸히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다만 켜켜이 쌓여가는 낙엽을 밟으며 만추의 끝자락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법주사 팔상전


속세와 이별하는 산

높이 1058m의 속리산(俗離山)은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784년(신라 선덕여왕 5년)에 진표(眞表)가 이 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는데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한 것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비로봉·문장대·관음봉·길상봉·문수봉 등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최고로 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등산은 아니었기에 속리산 자락을 살짝 밟아보는 것에 만족했다.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년)에 의신(義信)이 창건했고, 그 뒤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전혀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우리 또래 부산 시내 중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였다는데. 일행 중 두 살 어린 동생은 수학여행 때 문장대에 올랐다며 그 많은 여학생들을 이끌고 올라간 선생님들이 대단했다고 손사래를 쳤다. 리포터 역시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왔을진데 전혀 기억이 안났다. 하긴 어제 일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요즘에 하물며 중학교 시절이라니. 신통찮은 기억력 덕분에 법주사의 유명 문화재가 처음 본 듯 새로웠다.


높이 33m의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


법주사의 국보와 보물들

법주사에는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다. 특히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으로 국보 제55호다.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후 선조 38년(160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인조 4년(1626년)에 완성된 것으로, 1968년의 해체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벽의 사방에 각 면 2개씩 모두 8개의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건물 내부는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 쌍사자석등이 있다. 국보 제5호로,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오랜 세월 등을 받치고 있느라 고생이 많다”는 썰렁한 농담으로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신랑 덕에 허탈하게 웃었다.
법주사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청동미륵대불’을 떠올린다. 높이 33m의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청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 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한 것이다.
이 밖에도 국보 제64호인 ‘석연지’,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 보물 제15호 ‘사천왕 석등’ 등 많은 유물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법주사 천왕문. 쭉 뻗은 전나무가 멋지다


말티재 자연휴양림

법주사에서 숙소로 가는 길목에 ‘정이품송’이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1464년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임금이 타는 가마)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어가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수령이 약 800여 년인 이 소나무는 현재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자태를 반만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웠다.
일행의 숙소는 말티재 자연휴양림이었다. 말티재는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에 타고 왔던 연(輦)을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꽤 추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날이 풀려 어두워지기 전까지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었다. 예전 학교 MT때처럼 15용 큰 방을 빌려 한데 모여 늦게까지 담소를 나눴다.
이튿날 아침, 낙엽이 깔려 푹신한 산길을 걸었다. 숲속 공기는 차갑지만 상쾌했다. 결혼 후 처음 다 같이 모여 일박을 보낸 우리들은 따뜻한 봄날에 만나자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이제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을 살포시 넘어가고 있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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