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문해교육협의회 ‘늦깎이 학생 만화 자서전’

“공부 못한 세월을 넘어서니 지금은 행복해요”

지역내일 2011-11-30

“손자를 업고 다니며 한글을 배웠어요.” “장애를 넘어 잘 살아보려고 글을 배워요.” “60세에 글씨 배워 글짓기 상을 탔습니다.” “한글 공부해서 한국에서 열심히 살게요.” “한글과 영어를 마스터해서 대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지난 18일 한국만화규장각에서 열린 ‘늦깎이 학생 만화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여한 자서전 주인공들의 소감이다. 부천지역 어르신, 북한이탈주민, 결혼이주여성 등 14명은 166쪽의 자서전과 32쪽의 만화도록 속에 공부하지 못해서 아팠던 날들, 배우면서 만난 좋은 인연들, 그리고 변화된 삶과 앞으로의 희망들을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굽이굽이 살아온 세월을 다 담는 것은 역부족이었지만 “평생 내보지 못할 단 한권의 책을 출판하게 되어 마음이 뿌듯하다”는 이들을 만나봤다.   


주인공과 집필 작가, 함께 울며 작업
올 한 해 부천시문해교육협의회(대표 최종복)는 바빴다.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만화자서전으로 펴내기 위하여.
“자서전을 쓸 거라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물으셨어요. 그러면서 될까? 하고 망설이셨죠.” 성인문해학교 김지연 씨의 말이다. 자서전 쓰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50~ 70대 여성들과 북한이탈주민, 조선족, 결혼이주여성, 장애우를 대상으로 대필교사 14명, 담당 실무자 8명, 중등, 고등, 대학생 등 만화그리기자원봉사자 3명이 작업에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글만 있는 자서전을 쓰려고 하다가 만화를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한국만화창작지원센터 작가인 최정규 만화가에게 부탁을 드렸지요.”
그 때부터 집필 작가들은 자서전 주인공들을 대상으로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었고, 주인공들은 만화 스튜디오로 가서 최 작가에게 만화 그리기 교육을 받았다. 자서전에 직접 자기 손으로 만화를 그려 넣으면서 공부하지 못했던 한 많은 세월을 넘어섰다.
“지난 세월을 더듬으며 함께 울었어요. 작가와 주인공들 모두요.” 한희자 간사는 “문해 교사와 실무자들은 지난 7개월 동안 주인공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더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말했다.     
 
기역, 니은 배웠더니 알게 된 ‘딴 세상’
"쓸 줄 몰라 답답해 하다가 기역, 니은을 배우게 됐죠. 요즘은 겹받침 들어가는 문장을 배워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교 노인관련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올해 69세의 김옥희(가명) 할머니는 김장배추 사러 갔는데 상인이 배달해주겠다며 주소를 적으라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주소를 못 쓰고 머뭇거리다 다른 곳에 가서 배추를 샀어요.” 글을 모르는 동안에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내가 읽을 수 있다니...”. 기뻤다. 마냥 기쁘기만 했다. 요즘 할머니는 손녀에게 편지도 쓰고 소설책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섯 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장애를 입은 김용문(42) 씨. 그는 누워 있느라고 공부를 하지 못했다. 3년 전 그는 용기를 냈다.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구청을 찾아가서 한글 배울 곳을 알아보고 공부했어요. 그랬더니 딴 세상이 펼쳐졌어요. 자서전도 출판했고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그런 김 씨에게 형제들은 ‘놀랍다’ 했고, 동네사람들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용문 씨는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떨리고 기뻐서 집에 가서 보고 또 봤어요. 말로 표현 못해요. 제 인생 중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천시문해교육협의회가 펴낸 ‘도전과 성장, 늦깎이 학생 만화자서전’은 주인공들과 함께 했던 실무자,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살아있는 인생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

- 미니 인터뷰
부천시문해교육협의회 한희자 간사
 “늦깎이 학습자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대필 교사는 문해 수업의 전문성이 향상되었을테고요. 만화자원봉사자들도 배움의 소중함을 알게 됐을 겁니다. 이처럼 자서전 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은 이번 일로 하나가 됐어요.”
한희자 간사는 처음엔 적극적이지 않던 주인공들이 점점 관심을 보이게 됐다고 했다. 과거를 이야기할 때 아픔이 떠올랐지만 말하다보니 흥미를 보였다는 것. 어떤 학습자는 자신의 언니를 찾아가서 잃었던 기억도 찾게 됐다고 했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만화로 그리다가 가졌던 죄책감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분도 계셔요. 감동이었습니다.”
한 간사는 이번 일을 겪으며 문해교육은 사회적인 책임과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비문해자를 보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국가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인 지원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Tip 부천시문해교육협회
만화자서전 출판을 준비한 부천시문해교육협회는 2004년 춘의종합사회복지관과 전국문해성인기초교육협의회, 부천시평생학습센터, 나눔과 섬김 등 4개 기관이 모여 2006년 문을 열었다. 현재 15개 기관에서 2000여 명의 성인들이 문해교육을 받고 있다.
15개 문해교육기관으로는 춘의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한 9곳의 사회복지기관, 부천여성청소년센터, 새롬가정지원센터, 진영정보공고 부설 평생교육원 등이 있다. 각 기관 별로 초, 중, 고급반, 중입검정고시 해오름반, 노래글반으로 나뉘어 단계별 한글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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