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파란만장 인생사를 책으로 내면 전집이 될 것이라며 일기조차 쓰지 않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설책이 쏟아져 나와도 읽지 않는다. 개미 같은 일상에 책 한권 끼워 넣을 여유조차 없는 우리는 결국 문학의 위기를 자초했고, 이야기 부재의 팍팍한 현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삶의 아이러니는 부족할수록 더욱 귀해지는 것이 있다는 것. 문학의 위기가 회자되고, 소설의 역할 상실을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릴수록 이야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서 온 몸으로 사회를 겪으며 소설을 쓰는 ‘소설탄생’의 창작집 발간 소식이 더욱 반가운 까닭이다.
소설 쓰는 중노동이 즐겁다
소설 창작 동인 ‘소설탄생’이 수업을 하고 있는 곳은 반월공단 안에 있는 안산산업단지복지관. 지척에 있고, 내 생활과 관련이 있지만 올 기회가 드물었던 공단을 그것도 해 떨어진 저녁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생산을 마친 하루의 끝에서 또 다시 시작되는 생산. ‘소설탄생’을 만나러 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날 수업은 완성된 작품을 같이 읽고 평하는 합평시간. 회원들은 산고 끝에 작품을 완성한 작가에게 “ 맨 끝부분 ‘철쭉꽃잎이 진다’는 부분은 ‘철쭉꽃이 진다’가 맞는 것 같아요. 철쭉꽃은 질 때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백꽃처럼 꽃송이가 툭 떨어져 지거든요.” “역사적 사실을 쓸 때는 조사가 꼭 필요해요. 시기가 맞지 않다면 이야기의 진실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라며 작가에게 따뜻한 격려와 예리한 촌평을 하고 있었다. 6시 넘어 시작한 수업은 9시를 향해 가는데 끝날 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잠 못 이룬 밤을 며칠은 보낸 것 같은 회원은 소설 쓰는 것이 몸과 마음, 정신력까지 동원되는 노동임을 말해준다. 게다가 신춘문예 마감이 당장 낼모레란다.
촉수 강한 더듬이로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설창작’의 시작은 서울예대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소설 창작반이다. 복지관에서 둥지를 튼 3년 기간을 합하면 벌써 6~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문학상을 타고 등단을 한 회원도 생겼다. 얼마 전에는 땀과 노력의 결실인 창작집도 발간했다. 제목은 ‘황금 더듬이’. 307쪽 분량으로 출간된 지 일주일 된 따끈한 책이다. 제목은 보이지 않으나 존재 하는, 논의되지 않으나 공론화 되어야 할 것들을 촉수 강한 더듬이로 찾아내겠다는 회원들이 의지가 담긴 것. 그것도 황금처럼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려는 ‘황금 더듬이’가 되고픈 소망으로 회원 중 14명의 작품이 실렸다. 작품 내용은 자본 제일주의 사회에서 겪는 개개인의 소외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것이 대부분. 하지만 위기 없는 삶을 살아보지 못 한 생활인이기도 그들이기에 획득한 ‘사회성’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기우 지도 작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소설탄생 동인들의 글쓰기를 보며 놀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의 여러 모습을 직접 체험한 동인들의 소설은 화려한 기교를 뛰어 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오히려 소설에 대한 열정은 제가 배우고 있습니다. 실험성 강한 첫 번째 작품집과 동시대 현대인들의 시대적 모습을 잘 부각한 이번 작품집을 보면 회원들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식치료사’이지만 정작 자신이 ‘음식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집에 게재한 윤희웅 회장은 ‘소설창작’의 힘은 다양한 곳에서 정신과 근육을 단련한 회원들에 있다고 한다. “우리 동인에는 한 기업체에 30년 몸담은 회원의 삶이, 충주에서 근무를 마치고 달려온 회원의 집념이, 생산현장의 땀 냄새가 있습니다. 소설 쓰기를 배우기 위해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오는 이의 희망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소설 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 싫지만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지금은 작다 해도 해야 한다면 하고, 들어야 한다면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