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은 겸손의 미덕이 한올 한올 엮어져 조화를 이루는 우리 전통 공예이다. 자수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깊은 염원이 담겨있는 우리 전통 공예이다. 매듭은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거쳐 생활에 멋을 더하고 윤기를 보태는 그런 장신구들을 만들어 낸다. 그 매듭에 빠져 우리 것을 찾고 이어가는 전통공예가 ‘한울 ’씨는 강서구 방화동에서 ‘선아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황실공예대전 대상 수상한 망수 기능 계승자
전통기능 계승자 로 전통 매듭의 매력에 빠셔 살아가는 이영애(58) 씨는 천부적 손놀림으로 여러 형상과 빛깔을 만들어내는 전통공예가이다. 전승공예 대전에서 입선을 했고 2008년에는 헤럴드 전통문화예술대전에서 ‘별전 열쇄패’로 우수상을 받았다. 또 대한민국황실공예대전에서는 ’대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의 활동뿐 아니라 일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전시 및 시연에 참가했고, 중국 하얼빈 조선민족예술관에서 열린 명품관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다. 망수 기능 계승자로 지정된 이영애 씨는 전통공예가 우리 생활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이 그의 필생의 작업이며 희망이다.
이영애 씨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복원 작업을 하는 것은 후수 분야이다. 그녀에게 황실공예대전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겨 준 것도 영친왕비 대례복의 후수였다. 후수는 과거 의례복이나 관복 등을 입을 때 허리 뒤에 늘어뜨려 패용했던 장식물로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이나 문무백관들이 조복이나 제복의 장식품으로 패용했던 장신물이다. 후대로 갈수록 품계를 구별하는 용도는 상실되고 장식물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후수는 자수와 매듭을 이용한 망수가 함께 사용되며 왕의 후수는 자수가 없고 망수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영애 시가 복원한 태조 어진 등은 망수만으로 제작되어 있다. 망수는 후수에서 천을 이용한 자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다. 한올 한올 실을 꼬아서 매듭을 지어 만들어서 망을 짜듯 하기 때문에 망수라고 불린다. 망수는 매듭을 지을 용처에 따라 실의 굵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망수를 만드는 사람이 일일이 실을 자신이 사용할 망수에 적합하도록 손으로 꼬아서 망수를 엮는다.
한우물을 판다는 ‘한울’ 호를 얻으며 제자 양성
이영애 씨가 망수를 만나게 된 건 우연에서 비롯된 필연이다. 결혼해서 3남 1녀를 둔 이영애 씨는 막내 낳고 집에서 부업으로 매듭을 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손놀림이 빠르고 바지런하던 했지만 매듭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하면 할수록 매듭은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물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국내 최초로 조선 왕실의 전통 후수를 재현해 낸 망수 기능 전승자 장순례 선생을 만나면서 그녀는 망수와 사랑에 빠졌다.
장순례 선생의 수제자가 되어 기술을 전수받던 중 장 선생은 문화재 지정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심장 마비로 작고했다. 스승을 잃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는데. 주변에서 망수를 이어갈 사람은 이영애 씨 뿐이라는 독려에 힘입어 공방을 만들고 작업에 매진했다. 고울 ‘선’ 아름다울 ‘아’ ’선아공방‘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그 때 한우물을 판다는 뜻의 ‘한울’이라는 호도 함께 받았다.
이영애 씨는 한국의 전통을 이어가고 알리는 일에 대한 소명도 크다. 전통 기능계승자는 물론 아세아민족조형 학회 이사, 기능전승자회 이사, 채고 예술마당 풍덩예술학교 강사 등의 직함으로 전통 문화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에서 망수를 우려는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혈연 같은 제자들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30년 넘게 망수를 짜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천안에서 인천에서 원주에서 용인 등 전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제자들이 모이는 날이면 몸도 마음도 분주합니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라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전 참 운이 좋은 사람이지요.”
오가는 시간도 아까워 집에서 공방을 꾸려 운영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작업 시간이 따로 있지 않다. 사람들이 오면 가르치고 혼자 있는 시간이면 자신의 작업을 한다. 장인으로써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또 다른 계승자를 만드는 일이 남아
이렇게 오롯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망수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은 가족들의 배려가 없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아이들이 착하게 따라 주었고, 남편은 기계를 만들던 재주로 그녀가 필요한 모든 기구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때론 반대도 있었지만 그녀의 신념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남편이 만들어준 기구들로 망수를 엮어내고 있다. 망수로 얻은 성취감도 크지만 그녀는 이제 며느리 둘을 얻었다.
며느리를 볼 때 그녀는 아들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랐는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큰아들은 결혼 조건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전업 주부였다고 한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맏아들에게 맡겨진 책임감의 무게가 꽤나 무거웠나보다.”고 얼굴을 붉힌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 보다 요즘 이영애 씨가 더 마음 쓰이는 건 자신의 기능을 계승받을 계승자를 정하는 일이다. 물론 제자들이 재주가 있고 잘 따라주니 큰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딸이 이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하나뿐인 막내딸은 아직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매듭을 보고 자란 딸이기에 마음이 바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후수를 비롯해 매듭을 이용한 우리의 전통 생활 소품들과 장신구 들이 제 기능을 평가받아 우리 생활 속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망수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일 그리고 딸과 함께 망수를 엮으며 여생을 보내는 일이 이영애 씨에게 남아 있는 소망들이며 숙제다. 이영애 씨는 11월 10일부터 강서문화회관에서 망수 전시회를 갖는다. 대회에 출품해 입상을 하는 것도 보람 있지만 이웃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함께 하며 나누는 것도 그 이상의 보람이라는 생각에서 마련한 전시회다.
유창림 리포터 yumu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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