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줄까. 토끼가 방금 만든 의자에 앉아볼까?”
김영주(42, 중동 무지개마을) 씨가 그림동화책 ‘토끼의 의자’의 첫 장을 폈다.
숲속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 뒤편에는 ‘아무나’라는 푯말이 붙어있고.
“왜 아무나라고 써놨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하다 그치?”
책을 함께 넘기던 유치원생 선경이(가명)가 바싹 다가앉았다. “의자에 앉아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 장은 과일바구니를 의자 위에 놓고 있는 당나귀 그림. 아이는 의자란 앉을 수 있고 물건을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저요? 그림책 읽어주는 선생님이요.”
김영주 씨는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선생님이다. 그림책과 함께 아이들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웃음은 그래서 해맑다. 보통, 엄마들이 글자 많은 책을 읽어야 지식이 쌓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책 속에 들어있는 깊은 뜻은 그 이상이라는 영주 씨. 지난 14년 동안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 마음속에 상상의 씨앗을 심어주며 걸어온 그녀를 11월의 첫 날 만나봤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하여!
영주 씨가 만나는 아이들은 일주일에 60여 명. 하루 5시간 씩 일한다는 그녀는 커다란 가방에 동화책을 가득 넣고 다닌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책을 마음껏 고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업시간에는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게 한다.
“책을 읽어주면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풀어놓는 게 아이들이예요. 그만큼 아이들의 세계는 신기하고 경계가 없죠. 어른들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사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지식은 많지만 지혜는 부족한 편. 또한 마음 아픈 아이들도 많다. 영주 씨는 그런 상황들을 그림책을 읽어주며 풀어내고 있다.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어머니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저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갈 아이들에게 이겨낼 힘을 주려고 해요. 그것이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
심리상담사와 보육교사, 약물치료사, 미술치료사, 독서치료사(현재 공부 중) 등의 자격증을 두루 갖춘 영주 씨의 그림책 론(論)은 이렇다. 그림책을 편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글자를 읽고, 의미까지 생각하려면 바쁘다는 것.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편안한 상태로 감정을 이입하고 책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상 속에서라면 요즘에 강조하는 창의력과 사고력, 인지능력 같은 어렵다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는 결론.
“아이들 생각이 모자란다구요? 천만에요. 어른들이 이해 못하는 거죠. 읽거나 쓸 때 이렇게 하라고 엄마의 형식을 들이대면 잘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요. 그러면 책읽기와 글쓰기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녀는 책 속의 내용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상상하게 놔두면 일단은 성공. “형식을 따르지 않고 글을 쓰면 자기만의 형식이 만들어져요.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놔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누군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영주 씨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유석이(가명)는 책을 찢어 던지는 등 마음이 닫혀있던 아이였다. 말 할 땐 욕이 절반, 글을 쓰라면 마지못해 짧게 썼다. 영주 씨는 아이에게 “의미가 함축된 짧은 글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한다. 그러니 너는 시인”이라고 말해줬다. 엄마와 함께 외국여행을 가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도 들어줬다. 이 일은 아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현재 공부 잘하는 고교생으로 성장한 유석이는 가끔씩 꽃을 사들고 영주 씨를 찾아오고 있다.
“힘들고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누군가는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책을 통해 아이들의 심신을 어루만지면 흘륭한 아이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테니까요. 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은 공부도 잘해요.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면서 밝은 모습으로 살고 있답니다.”
TIP 영주 씨가 말하는 아이들 책 고르기
하나, “어려운 책은 권하지 않는다.”. 몇 문장 없는 그림책만으로 충분하다. 둘째, “그림책을 터부시하지 마라.”. 사람을 바꾸는 원초적인 힘은 그림책에서 나온다. 셋째, “아이 눈높이에 맞는 책을 고르게 하라.”. 엄마 생각에 맞춰 책을 골라주고 아이의 선택을 무시하면 안 된다.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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