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낙보청기, 들으며 느끼며 경험하며 세상 배우기

지역내일 2011-11-16

글 : 포낙보청기 배미란 (청각학박사) 032)326-9938
    
필자가 어릴 적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였는데  헬렌의 개인교사였던 설리번 선생님이 막무가내 고집불통으로 도저히 컨트롤이 힘들게 변해버린 어린 헬렌의 마음을 열게 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날도 헬렌은 온갖 심통을 부리며 거실, 식당, 침실 등을 어지럽히고 깨고 부수고 뒹굴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헬렌의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손은 더러워졌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은 반항하며 버티는 헬렌을 잡고 끌다시피 우물가로 가서 손에 물을 뿌려줍니다. 순간, 헬렌은 자기의 손에 닿은 물을 만지며 웅얼거립니다. ‘무-무 우-ㄹ’ 이라고. 설리번 선생님은 상처투성이의 헬렌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열병을 앓아 시각과 청각을 잃기 전, 어린 아기였던 헬렌은 막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배웠던 ‘물’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던 것입니다. 영리하고 총명했던 아이로 모든 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났던 헬렌은 병으로 크나큰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세상과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헬렌은 모든 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훌륭한 여성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의료기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필자는 많은 청각장애우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녀석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어린 아기들도 있습니다. 녀석들은 대부분 기계를 이용하여 소리를 듣도록 도움을 주는 “인공와우 수술”을 한 아이들이거나 수술을 기다리면서 고출력 보청기를 착용하여 청각재활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몸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견디어 내고 작은 귀에 걸린 인공와우 장치나 보청기를 기특하리만큼 잘 착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장치를 잘 하는 녀석들은 많지 않습니다. 울며 보채고 인공와우 또는 보청기를 자꾸 떼어내는 투정을 부리기 일쑤지요.  이제 어렵게 한 두 마디 무의미한 단어를 웅얼거리기 시작하는 녀석들부터 곧잘 대화를 알아듣고 무어라 부정확하지만 열심히 의사표현을 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청각뿐만 아니라 어떠한 장애를 가지고 있든지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만져보게도 하고 느끼며 놀아보게도 하고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만나는 사물들의 소리를 들어 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아이들처럼!


듣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만나는 세상을 낯설게 만들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이끌어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기들이 여리기도 하지만 장애까지 갖고 있는 경우 위험에 처할까봐 전전긍긍하며 걱정합니다. 다치거나 상하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과잉보호를 하게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도록, 여러 주변의 좋지 환경에 노출될까 가슴을 졸이며 촉각을 세워 방어합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세상을 무섭게 여기게 되고 어울리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은 함께 부대끼며 서로 섞고 섞이며 살아가는 공통된 공간입니다. 특별히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 달라서 의사소통이, 함께 움직이기가, 힘을 모아 활동하기가 어렵다 해도 작은 것 하나라도 들으며, 느끼며, 경험하며 알아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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