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부 모임- 분당 뮤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역내일 2011-11-13 (수정 2011-11-13 오후 11:51:16)

외로운 홀소리 서로에게 기대어 날다




시작은 이랬다. 어느 정도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서넛의 주부가 모여 연습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한 번 만들어 볼까?” 했던 것. 그게 6년 전이다. 그리고 오는 11월 20일 성남 아트센터에서 제5회 정기 공연을 연다.
“처음에 오케스트라를 하기로 하고 나서 제일 열심히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연습이요? 아니에요. 단원 구하는 일이었어요.” 박춘미 단장은 말한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아줌마들이 열정만 갖고 덤빈 일이다 보니 단원 모집 광고 한번을 할 수가 없었단다.
“길에 악기 케이스 들고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쫓아갔던” 열정이 통했을까? 알음알음으로 하나 둘 영입한 단원들에, 소문 듣고 찾아온 단원까지 지금의 뮤젠필은 현악파트와 플루트, 클라리넷, 혼과 오보에까지 두루 갖춘 3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마추어 아줌마? 열정은 프로!
마른 낙엽을 늦은 가을비가 적시던 날, 판교의 한 교회 지하의 성가대 연습실을 찾았다. 매주 금요일 30대부터 60대까지의 주부 30여 명으로 구성된 뮤젠필이 모여 연습실로 쓰고 있는 곳이다.
“자, 이제 자리에 앉읍시다. 수다는 이제 그만! 먹는 것도 이제 그만~!” 그칠 줄 모르던 깔깔거림과 소란스러움이 지휘자의 호소(?)에 겨우 진정되는 모습을 보니 학창시절 쉬는 시간이 막 끝난 교실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하지만 지휘봉의 움직임을 따라 시작된 연주는 진지하고 깊었다. 지휘자 손성돈씨는 뮤젠의 완성도 높은 연주는 단원 하나하나의 프로정신 때문이라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된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 일이에요. 혼자 하는 연주와는 다르죠. 나의 연습 부족이 팀 전체의 부족함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책임감이 무거울 법도 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하는 연주보다 오케스트라를 택하는 이유는? “혼자 하는 연주보다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기도 하고 보람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제일 큰 이유는요, 모이면 재미있어서죠!(웃음)” 첼로를 맡은 단원의 말에 이내 웃음이 인다. 구르는 가랑잎만 봐도 웃는다는 여고생들 같다. 


함께 함 속에서 나를 찾는다
뮤젠필의 모임은 대개의 주부모임이 아이들이나 남편 얘기로 채워지는 것과는 다르다. ‘음악’이라는 정해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크건 작건 공연을 위해 함께 하는 연습이 주를 이루고 파트별로 지휘자가 내준 숙제를 위해 서로서로의 연주를 듣고 평가해 주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은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뮤젠필에 재미가 빠져있다고 생각하지는 말 것. 바쁜 연습 일정 속에서 도시락데이를 정해 오순도순 모여 앉는 즐거움도 챙기고 봄·가을로는 가까운 공원으로 벚꽃 구경, 단풍나들이도 빼놓지 않는다. 단원이 많다 보니 별장을 갖고 있는 단원이 있어 지난 여름에는 함께 여행도 다녀왔고 펜션을 하는 단원의 제의로 합숙 연습도 계획중이란다. 이 모든 것들에 설레임을 더하는 것은 누구 엄마나 누구 아내라는 이유로 오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동네에선 801호 아줌마라 불려도 뮤젠필에서 만큼은 어느 파트 연주자 아무개로 통한다는 사실이 이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눔의 날개를 달고 세상 속으로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오선지 위 음표의 높낮이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마음과 마음이 한 곳에서 만나야지요.” 뮤젠 필의 왕언니이자 창단멤버인 안순석씨의 말에 단원 모두가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올리는 것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단원들.
그네들의 마음은 나눔이라는 한 곳에 모여 있다. 병원이나 초등학교, 시니어타워 등에서 봉사연주를 하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지역 방과 후 교실이나 장애우 단체를 찾아가 공연을 하고 돕기도 한다. 이런 꾸준한 활동에 힘입어 올 봄에는 성남시 우수동아리에 선정되는 영광도 있었고 얼마간의 지원금도 받았다고 한다.
해마다 정기공연도 하고는 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연주는 작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 돕기 희망음악회’라고 입을 모은다. “입장료 대신 성금을 받았어요. 공연이 끝나고 성금함을 보니 동전으로 꽉 찬 저금통이 있더군요.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어요.” 그리고 알게 되었단다. ‘관객들은 우리가 내는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귀 기울인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11월 20일 제5회 정기공연의 초대 관객 명단의 제일 위에는 그간 인연을 이어온 어려운 이웃들이 적혀 있다.
“뮤젠필을 해오면서 음악 안에서 기쁨도 느끼고 쉼도 느꼈어요. 이제 그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박춘미 단장은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는 단원들의 마음을 모아 대신 전했다.
정혜정 리포터 hc09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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