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 곤지왕 제사 1550년간 모신 아스카베신사

뿌리 찾아 한성백제 찾은 일본인들

지역내일 2011-10-30 (수정 2011-10-30 오전 11:51:12)

일본 오사카의 자그마한 아스카베신사. 이 지역 주민들은 순번을 정해 100평 규모의 역사의 손때가 묻은 신사를 쓸고 닦으며 정성껏 가꾸고 있다. 산사의 주인은 한성백제시대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 일본인들은 백제인 곤지왕의 제사를 1550여 년간 아스카베신사에서 모시고 있다. 


 
 백제인 곤지왕 제사 1100년간 지낸 일본인
 곤지왕은 형 개로왕의 명을 받아 두 나라의 친선을 위해 서기 461년 일본으로 건너가 16년간 지낸 인물이다. 일종의 ‘평화 대사’였던 셈이다. 그 뒤 웅진백제로 돌아와 생을 마친 곤지왕의 무덤은 확인할 길이 없고 사당조차 없어 잊혀진 존재였다. 반면에 아스카 주민들은 곤지왕이 죽자 위패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중앙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1천5백년 넘게 꿋꿋하게 신사를 지켜온 것은 일본 내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스카 지역 주민들과 타니하타 타카시 자민당 중의원 등 일본인 12명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10월26일부터 3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신사를 모시는 아스카 주민들, 지역 정치인, 고대사연구회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과 사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을 찾았다”며 방한단 단장을 맡은 타나카 모토가즈 시의회 부의장이 밝혔다.
 
 한성백제박물관과 꾸준한 교류 희망
 이들은 제일 먼저 곤지왕의 시조인 백제 온조왕 위패를 모신 남한산성 숭렬전에서 제사를 지낸 뒤 곧바로 올림픽공원 내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 김기섭 전시기획팀장 등 박물관 관계자들과 문화유산 해설사들의 환대를 받으며 내년 4월 개관할 박물관의 전시실 구성과 한성백제의 500년 수도였던 풍납토성, 몽촌토성의 발굴 과정과 출토된 백제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대 이상으로 박물관 규모가 커 인상적”이라며 말문을 연 아스카 주민대표 나카무라 요지 씨는 “아스카라는 지명은 안숙(安宿)  ‘편안하게 쉬는 땅’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또한 백제의 발자취가 담긴 유물이 여럿 출토되었지요. 이런 유물 복제품을 한성백제박물관에 기증한다면 별도의 전시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의견을 전해 왔다. 이에 대해 김기섭 팀장은 감사말과 함께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특히 이날 만남의 자리에는 <곤지대왕>을 쓴 정재수 소설가도 참여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내게 어느날 곤지왕이 꿈에 나타났어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전업 소설가가 됐는데 원고를 탈고한 뒤 다시 한번 곤지왕을 꿈 속에서 만났어요. 흔치않은 경험을 두 번이 한 걸 보면 나에겐 백제의 DNA가 흐르는 것 같다”며 소설에 얽힌 기이한 경험담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방한단은 근초고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석촌동 고분군을 둘러 본 뒤 곤지왕의 양아들 또는 손자로 추정되는 공주의 무령왕릉을 찾아 제를 지냈다. 방문 마지막 날에는 박춘희 송파구청장과 만나 ‘백제’란 연결고리로 두 도시의 지속적인 교류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한성백제문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풍납동 경당역사공원에서 열린 백제 혼불 채화식을 관람했다.
 “며칠 후면 일본에서 곤지왕 심포지엄이 열려요. 이번에 한국에서 체험한 ‘곤지왕의 뿌리’에 대해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현재의 허름한 신사를 개축, 역사관광지로 개발하자는 물밑 작업도 꾸준히 진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곤지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도 알려야겠지요.” 아스카 주민 대표가 밝히는 방한 소감이다.




 보수적인 일본인을 움직인 한국인 교수
  일본인들의 ‘곤지왕 뿌리 찾기’에 불씨를 지핀 사람은 양형은 오사카상업대학 교수이다. 아시아나항공 오사카 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한일 가교 역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관광학을 전공한 양 교수가 역사에 관심을 쏟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역사 공부를 꾸준히 하며 오사카 일대 명승지를 샅샅이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아스카베신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요. 마침 주민대표가 옆집에 살아 신사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엔 일본인들도 곤지왕이 백제인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어요.”
 양 교수는 개로왕과 곤지왕 관련 자료를 찾아 알려주며 주민들과 인연을 맺어 나갔다. 5년여의 세월이 흘러 곤지왕의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 아스카 주민들이 이번에 양교수의 도움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사료를 보면 일본 열도에 고대 국가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 곤지왕이에요. 어찌 보면 5세기에 불었던 한류일 수도 있지요.” 일본인들을 데리고 백제 유적 곳곳을 안내하느라 바쁜 양 교수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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