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고기 두어 쟁반 쇠주 몇 잔 / 시와 인생, 자유가 살아 튀는 장생포
그와 나는 햄릿처럼 마시고 떠들며 / 파도는 소월처럼 노래하네…
-합창곡 그대 눈 속의 바다 중
고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늙은 어부의 눈엔 파도가 일렁인다. 일몰의 태양빛을 받은 파도는 은빛 고기처럼 역광으로 빛난다.
노래는 단단한 바위섬 같은 바리톤의 독주가 앞 소절을 이끌고 밀물처럼 잔잔한 베이스 파트가 뒤이어 힘 있게 받쳐주며 바다를 노래한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클로르 모네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감성으로 남자의 파워로 노래하는 이들, 바로 대전남성합창단이다.
다른 직업 한 목소리
남자들이 모여 합창을 한다. 이 합창단은 벌써 20주년을 맞고 있다. 단원 수는 50여 명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웅장하며 폭 넓고 감미로운 화음을 자랑한다. 대전남성합창단은 잠시 활동을 중단하다 재개한 만큼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17일 연습실을 찾았다. 마침 이들은 이종문 부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새로운 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두 시간에 걸친 연습 시간 동안 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며 빠르기와 강약을 각자의 악보에 암호처럼 적어 넣었다. 지휘자는 손끝으로 말한다. ‘짧고 강렬하고 혹은 여리게’. 연습을 반복하며 이들은 머릿속에 악보를 새겨 넣는다.
작년 가을에 들어 온 김관홍(38·바리톤 파트장)씨는 “합창만큼 매혹적인 분야가 없다”며 “연습이 있는 시간은 꼭 지키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순수 아마추어 단체이니만큼 기교 없이 담백한 화음을 내는 데는 연습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직업군이 다양한 단원들이 모여 있어 매주 연습시간을 맞추기도 어렵지만 대회 일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 때문에 매년 정기 공연과 연5회 이상의 초청공연을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섬세한 연주로 곡의 맛을 잘 살리기로 정평 난 장동욱 교수(목원대 음악교육과)의 지휘로 합창단의 공연은 더욱 빛이 난다.
다른 이야기 하나의 노래로
합창단원 김진영(46)씨는 지난해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다. 김 씨는 집과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다 올 여름 다시 합창단에 합류했다. 발음이 정확하지 못한 그를 단원들은 말없이 보듬었다. 합창 연습은 김 씨에게 어떤 재활치료 보다 효과적이었다.
김 씨는 “말을 전혀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함께 노래하고 호흡하는 동안 예전의 나를 되찾은 것 같다”고 천천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서로를 소통하며 공감을 형성하는 이들 합창단의 힘은 어느 모임보다 결속력이 강하다. 무대 위에 서서 공연 중에 악보대가 갑자기 내려가는 일이나 연미복의 복대가 풀어져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낼 때도 이들은 서로를 믿는 신뢰감이 있었다. 능숙하게 난감한 순간을 넘기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100% 신뢰감이 그것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한 곡을 완성해 내는 대전남성합창단은 다음달 15일 ‘제천음악제’ 초청공연을 위해 오늘도 맹연습 중이다.
문의 : 010-2078-7655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아마추어지만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대전남성합창단''. 기교없는 담백한 화음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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