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수제도장 만드는 송이슬 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도장 ‘수제도장’

전통과 문화가 담긴 디자인과 글씨, 디자인 종류도 100가지 이상

지역내일 2011-10-05

복잡한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도 아니다. 길게 늘어 선 줄을 역주행 해보니 그곳은 수제 도장을 만드는 곳. 수제 도장은 이름 그대로 손으로 직접 만든 도장. 비슷비슷한 모양에 비슷비슷한 글씨체의  일반 도장과 달리 디자인 개념이 강한 점이 수제 도장의 특징이다. 줄 선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고개를 내밀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아름다움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동양화가 연상되는 나무 그림, 바위틈에서 생명력을 발하는 작은 들꽃,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귀까지. 도장의 무한한 변신이 놀랍다.


서예 잘 쓰는 소녀, 도장의 매력에 푹 빠지다
행사장 긴 줄의 끝에는 앳된 얼굴의 송이슬 씨가 있다. 그녀 앞 작은 테이블 위에는 각종 도장 재료와 예쁜 디자인의 도장 샘플이 즐비하다. 줄을 선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도장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걸음을 멈췄다. “내 순서가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한 초등생은 자기 차례가 되자 벌써 마음을 정한 듯 “엄마! 저 이 디자인으로 도장 새기고 싶어요” 한다. 아이가 고른 디자인은 ‘초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이파리 풍성한 느티나무 모양의 도장. 글씨도 자연이 느껴지는 동글동글한 느낌의 글씨체로 하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많은 도구에서 날카로운 칼을 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도장을 판다. 몇 명의 고객이 도장을 새기겠다고 이름을 적고 디자인을 고르는 사이, 15분이 흘렀다. 하나의 도장이 완성됐다. 그녀가 완성된 도장을 흰 종이에 꾹 찍어 보여주자 아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송이슬 씨가 수제 도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눈 뜬 건 서예를 배우면서부터다. 어렸을 적부터 서예를 하던 할머니 영향으로 열 살이 되기 전에 붓을 잡은 그녀는 글씨 쓰기를 마치고 경건한 표정으로 도장을 찍는 할머니를 보면서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각종 서예대회 나가 상을 받은 그녀는 서예가 주는 담백함과 고즈넉함이 좋았다. “할머니 옆에서 먹을 갈아주던 방 분위기가 그리워요. 붓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 손톱이 늘 때 낀 것처럼 까매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는데 창피하지 않았어요. 그땐 잘 몰랐는데 하얀 한지에 먹이 스며들어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매번 같은 글씨를 써도 모양이 항상 제각각 다르다는 것도 신기 했고요. 그때 실력이 마르지 않은 덕분에 드라마 ‘짝패’에서 서예 쓰는 손으로 ‘방송’에도 출연했어요. 하하.”
망설이 없이 대학의 서예과에 입학한 그녀는 그곳에서 ‘낙관’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에 눈을 뜬다. 낙관이란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마무리와 자필의 의미로 자신의 이름이나 제작년도 등을 찍는 것을 의미하는데 낙관은 서예의 마무리이자 작가의 정신세계가 담겨진 또 다른 예술로 평가 받고 있다. 교과 과정인 ‘전각’을 배우면서 낙관으로의 도장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된 그녀는 도장에 디자인을 가미해서 ‘작품’이 되게 했다. 대량생산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통할 수 있는 ‘비지니스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의욕을 주는 매진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좋은 곳에 많이 쓰세요
도장 공부에 몰두한 결과 졸업 작품도 그 동안 새긴 전각들을 모아 찍은 것을 냈다. 작품 크기는 무려 세로 25cm, 가로 1m25cm. 학교를 졸업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그녀는 청와대에서 있었던 나눔 행사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도장을 전통 예술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도장을 하면서 우리 문화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고객은 한 행사장에서 만난 주부. 첫 아이 돌잔치 선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주부는 그녀의 도장을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한 케이스. 그후 조카, 고모, 친구 등 10명이 넘는 이름을 그녀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미니홈피에 대문사진으로 도장 사진을 올려주는 성의까지 보여줬다.
“저는 제가 새긴 도장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생활 예술품’인거죠. 제작 시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도 그런 자부심이 있어서예요. 그리고 작품마다 다른 개성이 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녀는 고객에게 완성된 도장을 건네줄 때 ‘좋은 곳에 많이 찍으세요!’라는 말을 꼭 한다. 도장의 재료 ‘옥돌’에 담긴 행운과 애정의 의미도 알려준다. 얼마 전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러브콜도 받았다. “아직은 배우는 과정이라 거절 했어요. 앞으로 1년간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매진 할 생각입니다. 하면 할수록 할 것 많고, 배울 것 많은 분야 인 것 같아요. 분야를 확장해 간판이나 광고에도 우리 전통 문화가 담긴 글씨를 새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남양숙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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