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노래하는 삶, 저의 건강 비결입니다”
비가 내린 후 한결 청명해진 가을 날, 가곡교실이 열리고 있는 분당 노인종합복지관 강당에서는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청년의 음색에 버금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화용(81·분당구 정자3동)씨. 여든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폭풍 성량을 가진 테너 선생님이다.
중앙대 교수를 거쳐 강남대학교 예술대학장으로 정년퇴임한 그는 일주일에 세 번, 분당 노인종합복지관과 정자3동 주민센터에서 가곡 교실을 지도하고 있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120명 모집인원이 순식간에 마감되고, 10년째 지도중인 주민센터의 수강생은 장기, 원거리생이 대부분. 열정어린 노래와 지도로 인근에서 입소문난 강좌다.
늦깎이 성악전공, 53세에는 스페인으로 유학 떠나
“노래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5학년쯤인 거 같아요. 노래를 곧잘 했던지 선생님들이 아침 조례 때면 저에게 선창을 시키곤 했어요.” 학창시절에 음악부장을 맡고 합창지휘를 하긴 했지만 경희대에서 성악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레코드가 유일한 음악선생님이었다는 그. 노래를 지속 할 수 있던 계기라며 두 가지 사연을 전한다.
“인터뷰하는 오늘(10월 17일)은 저게 의미 있는 날입니다. 6·25 전쟁 때 인민군한테 잡혔다 불려났으니 다시 태어난 날인 셈이죠. 만약 그때 죽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그는 속성 사범과정을 마치고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중 전쟁을 맞았다고 한다. 징병을 피해 몇 달간 움집에 숨어 지내던 어느 날 국군 입성 소식을 들었다고.
“학교에 선생님과 주민들이 모두 모여 있었지요. 멀리 군인들이 보이니까 노인 한 분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는데, 후퇴중인 인민군이었던 거예요. 노인은 총살당하고 저를 포함해 남선생 넷, 여선생 둘이 흥남까지 끌려갔어요.”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양민들의 집단 처형지. 어스름한 새벽 언덕 위 웅덩이로 끌려가던 찰나, 국군들이 들이닥쳐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곳에서 수백 명이 죽어나갔다고 하더군요. 국군 덕분에 살았다고 생각해 흥남부두에서 바로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UN의 날 합창을 기획하는 등 군 생활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그 시절 공군군악대 생활은 훗날의 음악적 자양분이 되었다. 군악대 생활에서 처음 접한 악기들과 혹독한 연습을 통해 콩쿨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쌓게 된 것. 결국 1957년 동아일보 주최 전국 음악 콩쿨대회 성악부문에서 당당히 수석 입상을 차지했다.
“그전 대회는 돈 받고 상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자유당 정부 때는 그런 일이 흔했으니까. 돈이 없어 악보도 손으로 베껴 썼는데 본선에 가보니 서울 음대생 천지에요. 실력 테스트나 해보자는 심정이었죠. 근데 제 노래가 끝나고 나니 심사위원 한분이 악보를 보자고 하더군요. 고음이 너무 좋아 혹시나 음을 낮춘 건 아닌 가 의심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후로 그의 별명은 공군테너. 부상으로 받은 롤렉스시계는 부모님의 작은 가게터가 되어 의지 할 곳 없던 실향민 가족의 든든한 기반이 돼 주었다.
취미와 여가로 즐거운 노년 꾸려
현재 그가 즐기는 취미생활과 여가는 다양하고 활기차다. 그중 본인이 꼽는 대표 취미는 열대어 키우기. 40년 전부터 키워온 열대어가 30여 종에 달한다는 데 각각의 특징을 줄줄 꿰는 모습이 전문가 수준이다. 요즘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디스커스’ 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또 다른 취미인 애완견 기르기 역시 18년씩 장수시켜 새끼 수십 마리를 얻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그는 작년에 팔순 독창회를 치룰 정도로 정정한 편. 매일 며느리의 출퇴근과 손주 등원을 도맡고 아내와 당일치기로 주문진 여행을 다녀올 만큼 운전도 즐긴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생활을 갖는 게 좋아요. 그래야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안 생기지요. 저는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고, 하루 한 시간씩은 꼭 노래를 불러요. 즐거울 땐 활기찬 노래, 울적할 땐 슬픈 노래를 하는 게 제 건강의 비결입니다.(웃음)”
내년에 50주년 공연을 구상 중인 그의 최대 고민은 성량도 호흡도 아닌 바로 암기력. 얼마 전 호세카레라스의 실황공연에서 1, 2절 가사를 바꿔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다소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친군데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여태까지는 악착같이 외웠는데 이제는 가사 좀 보고 해야 할 거 같아요. 허허. 요즘에는 아내와 사후 기증에 대한 얘기도 종종합니다. 가난한 사람한테 주면 좋겠다고…. 그래서인지 내 몸을 더 건강하게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네요.(웃음)”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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