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30년의 이대욱(58세) 교사. 그가 꿈꾸는 교사 모델은 ‘아빠 같은 선생님’이다. “아이들한테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고민 있으면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문자 주고받으며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교사요.” 실제 그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진짜 선생님’은 소통할 줄 아는 사람
고3 수험생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자식 같은 제자’들을 다독거리고 격려한다. “수능점수 1~2점 가지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으라고 이야기해요. 대학 들어간 후 적성에 맞지 않아 몇 년을 방황하다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제자를 종종 보았어요. 참 안타깝지요.”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73학번인 이대욱 교사는 다양한 국어교과서와 수험생 참고서, EBS 수능교재 등 지금까지 1백 권이 넘는 책을 펴 낸 인기 필자다. 이밖에 교육청 모의고사 출제와 MBC 논술세대장학퀴즈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등 탄탄한 실력을 갖춘 스타 국어 교사다.
“의욕만 앞섰던 30~40대에는 ‘많이 아는 교사, 열심히 잘 가르치는 교사’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꽤 엄했고 공부도 많이 시켰죠.” 하지만 연륜이 깊어지면서 그의 교육 철학은 변화를 거듭하며 다듬어졌다.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르친 내용을 얼마만큼 학생들이 소화했는지를 꼭 살펴야 되요. 그래서 ‘소통의 기술’이 꼭 필요하죠. 그 이치를 터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쓰게 되었어요.” 이 교사는 수업준비를 위해서 관련 서적은 물론 개그콘서트 같은 TV 인기 프로도 챙겨 보면서 학생들의 유머코드를 읽어내려고 애쓴다. “나이 들수록 찬밥이 싫어지고 더운밥이 좋아지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따끈따끈한 지식 밥상’을 차려주어야 해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게 하려면 내가 더욱 더 분발해야겠죠.” 그가 풀어내는 ‘찬밥, 더운밥 교수법 이론’이 흥미로웠다.
교사-회사원-다시 교사, ‘천직을 찾다’
교직에 입문하게 된 30년 전 옛이야기를 넌지시 물었다. “다들 가난한 시절이라 별 고민 없이 등록금이 싼 국립사대에 진학했고 당연히 선생님이 내 길이라 생각했죠. 대일고가 첫 부임지였어요. 6년간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정체된 느낌이 들며 갑갑해 견딜 수 없었어요. 회사생활에 동경심도 있었죠. 사표를 냈어요.” 곧바로 대기업 기획실에 입사, ‘이 선생’에서 ‘이 대리’로 변신했다.
사내 교육프로그램 진행이 그의 업무였다. 조순, 김대식 교수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석학을 섭외, 강사로 모셨다. 그들의 강연을 들으며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배웠다. “강사 분들과 동행하며 이런저런 개인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한결같이 교사란 좋은 직업을 왜 그만뒀냐고 반문하셨어요. 아이러니하게 회사원이 된 뒤에야 교직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지요.”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에 지쳤고 층층시하 상사 시집살이와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에 회의감이 몰려왔다.
국문학에 대한 애착 때문에 직장 생활 중에도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고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몇 년간 외도 끝에 교사가 내 천직이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그리고 ‘진짜 선생님’을 목표로 살자고 스스로를 담금질했죠.” 치열한 경쟁과 실적 스트레스에 들볶였던 회사 생활은 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열심히 살자’ 평범한 진리가 주는 울림
“게으름 피웠던 초임 교사시절을 반성했어요. 점심시간 쪼개 영어 공부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직장인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죠.” 이 교사는 국어국문학 전공서적을 펼쳐들고 새벽부터 수업준비를 했다. 실력이 입소문이 나면서 학교 밖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한때 학원 등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꽤 받았죠. 하지만 3년간 직장 경험이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교사라는 ‘내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동안 각양각색의 제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고2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은 등록금도 못 낼 정도로 형편이 딱했어요. 하지만 심지가 곧고 지독한 노력파였죠. 어렵게 대학에 입학 후 교생실습도 모교로 나올 만큼 학교에 애정도 많았지요. 몇 년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판사예요. 내 제자지만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제자들을 격려하며 제 길 찾도록 도와주는 이 교사는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이 늘 가슴 한 구석에 묵직한 빚으로 남아있다는 그는 ‘진짜 선생님’이라는 목표를 향해 끝까지 노력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시를 읽으며 행간의 속뜻을 음미해 주면 아이들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요. 학생들 감수성이 메말랐다는 건 어른들 고정관념일 뿐이에요.” 최근 들어 시의 세계에 매료된 ‘반백의 청춘 교사’ 이대욱은 아이들과 새로운 소통을 준비하고 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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