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옷 수선까지 - 김을영씨의 옷이야기

지역내일 2011-08-28 (수정 2011-08-29 오전 12:43:23)

내 옷의 인기비결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 



수내동에 위치한 ‘옷 이야기’는 옷에 관한 인연이 켜켜이 쌓인 리폼, 수선전문점이다. 이 곳 주인장 김을영(67·분당구 수내동)씨는 오랫동안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했고 피에르 가르뎅에서 전무로 정년퇴임 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 친구들이 체면 때문에 제2의 인생을 포기할 때 “지위, 체면이 무슨 상관이냐? 즐거우면 되는 거지”라고 외칠 만큼 본인 일을 사랑한다.


궁리와 창조의 디자인, 내 평생 가장 즐거운 일
어릴 적 그의 그림 실력은 빼어났다. 학교 다닐 때는 교실 뒤를 도배 하다시피 했고 각종 교내외 상을 독식했다. 군대에서도 그림 덕 꽤나 봤다. 각종 교육용 슬라이드와 차트를 전담하며 비교적 편히 복무했고 이순신 장군 해전을 담은 슬라이드로 사령관 상을 탔을 정도. 그러나 뜻하지 않게 미대 입시에 실패하고 방황하던 때 디자인과 연이 닿았다.
“그 당시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유명한 디자이너였어요. 제 그림을 한번 보고는 재능이 있으니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죠. 그때부터 3년간 그분 밑에서 사사했어요.”
교복과 모자를 뜯어 교묘히 손봐 입던 전력(?)이 녹슬지 않았던가. 맞춤복이 인기 있던 시절, 이대 앞에 있던 매장은 늘 여학생들로 북적였고 직원 신분으로 수 십 명을 지도할 만큼 몇 년 만에 실력도 인정받았다.  
이 후 그는 명동에 자신의 매장 ‘모드랑’을 차리고 오랫동안 운영했다. “그때 손님들이 요즘도 일부러 찾아오거나 택배로 수선을 맡기는 단골들이지요. 스물일곱에 집을 샀을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어요. ‘남자가 무슨 디자인이냐’고 비웃던 집안에서도 비로소 인정해주더군요.”
단순한 디자인이라도 어떻게 변형할까 늘 궁리한 덕에 백화점과 대기업 비서실의 유니폼을 만들었고 워커힐의 무희복, 쇼프로그램의 무대의상까지 디자인 영역은 다양해졌다.
“KBS ‘젊음의 행진’ 의상을 2년 정도 만들었어요. 당시 인기그룹 소방차가 롤러를 타고 나오면 바지에 연두와 노랑을 언발란스로 덧 댔죠. 튀는 포인트로 분위기를 맞춰 인기가 많았어요.(웃음)”
맞춤옷이 사양길에 접어들 무렵 김을영씨는 의류업체로 이직했다. 몇몇 국내 기업에 스카웃 됐지만 답답한 환경에 제대로 적응 못하다가 피에르 가르뎅에서 정년을 마치게 되었다고. 별다른 학벌과 인맥이 없어도 매장 판매에서 판가름나는 실력과 재능을 인정해 주는 회사 분위기 덕이었단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몇 년씩 뒤쳐졌을 때였죠. 외국으로 시장조사를 가면 눈으로 휙 둘러본 후 화장실에서 스케치 했어요. 특이한 질감이나 소재도 손으로 한번 만져보면 감이 잡혔구요. 본사 회장님이 즉흥 디자인으론 따를 사람이 없다고 칭찬하곤 했지요.(웃음)”
아무리 맘에 드는 디자인이라도 단순 모방은 피했다. 이 옷의 칼라모양, 저 옷의 단추 등 힌트를 살려 그만의 작품으로 디자인 한 것. 새 디자인을 구상할 때면 가족을 대상으로 품평회를 거치고 아내와 딸들의 반응을 보면서 해당 연령대의 기호를 추측했다. 유명 브랜드에 한국식 디자인이 맞아 떨어지면서 디자인 실장으로 입사해 전무까지 승승장구 했다.


다리에 쥐 날 정도로 일하지만,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옷 수선을 하게 된 것 역시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단골의 권유 때문이었다. 평생 일했으니 쉬고 싶었을 법도 한데 한 달반이 지나니 그 또한 무료함을 참을 수 없었다고. 친구들은 ‘3개월, 아니 길어야 6개월이면 때려 칠 것’이라고 폐업을 점쳤지만 보란 듯이 10년을 넘겨 현재에 이른다. 요즘도 하루 7시간씩, 가끔은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일에 몰두하지만 일과 후 마시는 맥주 한잔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는 그.
“저에겐 창조하는 자체가 참 즐거운 과정인데 손님들도 만족해 하니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생각하다보면 잘 때도 불쑥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니까요. 하하”
집에서의 그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리저리 가구를 옮기고 수석과 화초를 가꾸는 게 유일한 낙”이라는 답변. 그래도 “남다르게 꾸미고 가꾸는 재주가 있긴 한 지 돈을 별로 안 들였는데 다들 비싸고 고급스럽게 본다”는 덧붙임 속에 디자이너의 자부심이 묻어있다.
창작의 재미에 대해 끊임없이 쏟아내던 그가 인터뷰를 마칠 즈음 조심스레 남은 꿈을 얘기한다.
“좋은 재주 주시고 이날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니 감사한 마음이지요. 필리핀과 네팔 두 곳에 교회를 지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후원할 생각이에요. 지금 수입은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부 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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