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들 - 도봉마을합창단
세대 간 아우르며 하나 돼 ‘합창’이라는 퍼즐 맞춰가며 감동 느껴
지난 9월26일(월) 오후7시30분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은 시간. 방학동 방아골복지관 2층 강당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들려오는 ‘오, 샹제리제’의 신나는 리듬에 고개가 자연스레 박자에 맞춰 좌우로 움직인다. 정통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프로들의 잘 다듬어진 화음이 아니라 다소 거칠고 세련미는 없지만 가족같은 이웃들이 함께 모여 서로 눈을 맞추며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이 마냥 정겹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닌,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들이 함께 모여 만든 ‘도봉마을합창단’. 지난 3월 창단해 현재 6세 유아부터 70대 어르신까지 35명의 단원들이 다양한 세대 간 만남을 통해 동네언니 동생, 동네 어르신, 동네친구가 돼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합창하며 노래로 소통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여 서로 화음을 맞춰나가는 도봉마을합창단 연습현장을 찾았다.
남녀노소 위화감 없이 합창 통해 함께 어울리며 ‘사회적 가족’이라는 새로운 관계 형성
오는 10월8일 도봉산축제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에 바쁜 도봉마을합창단원들. 마침 중고등학교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이 많이 불참한 가운데 이 날 참석한 15명의 단원들은 무대에 올릴 곡들로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각 파트별로 나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습하고, 또 전체 파트를 함께 맞춰보며 세대간, 남녀간 위화감 없이 함께 어울리며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도봉마을합창단 총무를 맡고 있는 최소영씨는 “특별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웃을 만나듯 편하게 찾아 노래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며 ‘사회적 가족이 되어보자’라는 취지로 창단하게 됐다”며 “하지만 처음엔 어린이와 어르신 간 조화가 이뤄질까 걱정도 했었는데 합창을 통해 이런 고민은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한다. 마침 도봉지역자활센터 송 건 관장이 단장을 맡고, 송 단장의 권유로 독일에서 오랫동안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율리아 신씨가 마을합창단의 취지를 흔쾌히 받아들여 지휘자로써 단원들의 역량을 끌어내 키우고 있다. 최씨는 “악보도 못 읽는 단원들을 하나하나 따라올 수 있도록 지휘자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매주 월요일 연습 외에도 필요시 파트별로 모여 연습시간을 갖고 있다.
지난 6월18일엔 도봉구민회관 소강당에서 2시간 동안 가족합창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이날 무대에서 합창단원들은 합창 중창 솔로를 비롯해 뮤지컬 무대를 함께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베이스 담당 김문규(48세)씨는 “과연 공연할 실력이 될 수 있을까 처음엔 걱정이 많이 됐지만 공연 당일 생각보다 훌륭한 무대가 꾸려져 기뻤다”며 “아직 기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라 안타까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합창단원 생활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삶의 긍지도 돼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마을 안에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노래로 소통하며, 온 마을에 합창 소리 퍼져 나가길
도봉마을합창단 단원 구성을 보면 모녀지간, 자매지간, 혹은 온 가족이 참여하며 가족간의 정을 더욱 다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남편과 중학생 아들 등 온 가족을 비롯해 조카딸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알토 담당 홍은정(46세)씨는 “저녁 먹고 부담없이 뛰어나와 연습하면 되는 마을합창단이라 가족 모두의 동의하에 들어오게 됐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나를 포함해 남편 아들 모두 각자 집에서 노래를 연습하느라 바쁘다. 사실 노래방이나 가족행사가 아니면 가족이 함께 노래 부를 기회가 흔치 않은데 온 가족이 노래 부르는 모습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우리 집 풍경”이라며 “6월에 발표회를 앞두고 연습할 때도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발표회 당일 생각보다 잘 해 뿌듯했다. 온 가족이 그런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잇어 또 색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자매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소프라노 담당 어린이집 원장 지명숙(54세)씨는 “합창단 활동을 하기 전에는 일 년 365일 늘 어린이집이나 보육에 관한 생각들이었는데, 여기 와서 합창을 하면서는 잡념 없이 음악에 몰두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치료제 역할도 하는 것 같다”며 “또한 6세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했는데 처음의 무질서하던 모습이 음악을 통해 달라지고 세대 간 소통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뿌듯함과 함께 사회적으로 이런 모임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전한다.
재즈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 가성훈(19세)씨. 그는 “처음엔 나이대가 다양해 낯설었는데 음악을 매개로 한 교감을 통해 화목하고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좋다”며 “음악은 전공자만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진짜 음악인 것 같다”고 말한다.
11월에도 정기발표회를 앞두고 있는 도봉마을합창단. 비록 당장 악보를 읽지 못하더라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라도 언제든 이곳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전화: 956-0586)
한미정 리포터 doribang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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