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모(44·잠실동)씨는 얼마 전 고1 딸아이가 한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 죽으면 모든 게 편안한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 모두들 힘들면 자살을 한 번씩 생각한대잖아. 나, 그 사람들 마음을 정말 이해할 것 같아.”
순간 딸아이에게 무슨 말을 무엇부터, 어떻게 해 줘야 할 지 눈앞이 깜깜했다.
유모(39·대치동)씨는 얼마 전 조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하기 2주 전 유씨를 찾은 조카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고. 조카를 잃은 유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깊은 대화, 베르테르효과 줄여
청소년들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기준으로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는 자살로 자살자 수도 2003년 100명에서 2008년 137명, 2009년 202명, 2010년 146명 등으로 나타났다. 가정불화, 성적비관, 이성문제, 집단 괴롭힘 등이 주요 이유다. 아울러 또래 청소년들의 모방 자살, 즉 ‘베르테르효과’ 확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면 또래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청소년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매우 충동적이기 때문에 자살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명의전화’ 자살유가족지원센터 김봉수 사회복지사는 “초등학교 4~5학년만 돼도 자살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고 있다”며 “자살에 대해 무작정 숨기려 하거나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입시키려하지 말고 아이와 깊이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어떻게 하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지, 또 자살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진지하게 나누는 것. 이때 자살을 미화하는 용어는 자제해야 한다. ‘편히 쉬게 됐다’ ‘이제 힘든 생활은 끝났다’ ‘하늘에 있는 할머니와 행복할 것이다’ 등 죽은 후의 상황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특히 가까운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더 세심한 배려와 관찰로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부모, 형제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까운 존재가 바로 친구. 그런 친구를 잃은 상실감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 사회복지사는 “어른도 견뎌내기 힘든 아픔을 아이 혼자 이겨내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때는 상담이나 치료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마음 속 상처 알리고 나누며 치유해야
자살을 선택한 사람의 가족과 친지도 커다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자책감 때문에 또 다른 참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자 유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은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남들의 비난이 만들어내는 수치심까지 더해져 가족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기보다 남의 눈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 되고 만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상처를 들어주고 공감할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에서는 자살 유가족들을 위한 자살 유가족 전용상담전화를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김 사회복지사는 “자살자 유가족은 가족 뿐 아니라 친구, 직장동료 또 제자를 잃은 학교 선생님까지 다양한 관계자가 포함된다”며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슬픔 등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상처는 누군가에게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일부 치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생명의전화에서는 상담자에게 안부전화를 걸어 지속적으로 치유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사이버상담과 자조모임 운영, 방문·내담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인 자살자유가족 자조모임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어디에서보다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한국생명의전화 자살자유가족 자조모임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매주 화요일에 진행된다.
한편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도 자살자유가족 자조모임 ‘자작나무’를 운영하고 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한국 생명의전화 자살 유가족 전용상담
(02)7633-119 월~금 오후1~6시
*서울시자살예방센터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