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화랑초등학교 류근원 교장

“내 동화 듣고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다면…”

매일 아이들 손 잡아주고 동화 읽어주는 교장선생님

지역내일 2011-09-27

셋째시간 종이 울리자 화랑초등학교 류근원 교장이 교장실을 나선다. 파란 망토와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 복장이다.
이번 시간엔 3학년 6반으로 갈 차례. 마법사 복장을 한 류 교장이 들어서자 아이들이 ‘와아~’ 함성을 지른다. 칠판 앞에는 ''산타 교장선생님이 들려주는 동화시간''이라 붙어있다.
“오늘은 어디 손을 한번 잡아보자. 선생님은 손을 잡아보면 얘가 책을 많이 읽는구나, 다 알 수 있거든.”
아이들 한 명 한 명, 손을 모두 잡아 준 뒤 류 교장은 동화를 시작한다. 오늘은 ‘우리 모두 1등’''이란 그림동화책을 골라왔다. 작가는 ‘류근원’. 바로 류 교장이 지은 동화다.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 애드립을 넣어가며 동화를 구연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동화가 끝나자 류 교장은 아이들 이름과 메시지가 적힌 그림엽서를 들고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나눠준다. ‘동화를 잘 들어줘서 예쁘다. 책을 많이 읽어라’는 내용이다. 책에 싸인을 해서 나눠주기도 한다.  


동화작가 류근원 교장. 1984년 ‘아동문학평론’을 통해 등단을 했고 계몽문학상(1985), 새벗문학상(1985), mbc꿈을키우는 나무상(1986), 대한민국문학상(1987) 등을 줄줄이 받았다. 한동안은 작품활동을 쉬다가 2002년 교원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엔 톨스토이아동문학대제전 장편동화 대상, 천등아동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을 받았다. 올해 나온 동화집 ‘훌쩍이의 첫사랑’ 외 10권이 넘는 동화책을 펴냈다.
지난 5월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 어린이책잔치에서 ‘아동문학 100인 서가전’ 작가에 포함돼  ‘동화작가 류근원’으로 화랑초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왔다. 거기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류근원 작가 서가에 왔지만 20년 후 이 자리에 너희들 서가가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그에게 동화를 쓰는 이유이자 동화의 근원이다.
“애들 때문에 동화를 썼어요. 예전에 벽지학교에 근무할 때 애들한테 책을 읽어주는데 같은 책을 자꾸 읽어주진 못하겠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줬지요.”


교장선생님과 학생들이 이렇게 친한 학교가 또 있을까. 화랑초 학생 수 1500명이 넘지만  하루는 피에로, 다음엔 마법사로 분장해 교실마다 다니며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니 아이들은 멀리서도 류 교장을 보면 “교장 선생니임~ 안녕하세요?” 소리쳐 인사를 할 정도다.
올봄 입학식 때는 220명의 신입생들 앞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교장이 등장해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직접 동화를 들려주고 축하메시지를 쓴 그림엽서도 선물해 학부모들이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류 교장은 아이들에게 교훈을 가르치기보다 동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건 꿈을 심어주는 거죠. 교장으로서 권위나 직위를 버리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학교엔 가정형편이 안 좋은 애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이 동화를 통해 감성을 키우고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화랑초의 교육목표는 ''풀꽃 속에서도 또다른 세상을 보는 화랑어린이''다. 역시 동화작가 교장선생님이 계신 학교답다. 화요일 아침 문학방송 시간에는 아이들이 직접 나와 시낭송을 하고 글쓰기 공부도 한다. 
류 교장은 지난해 동화구연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교장선생님이 있는 학교니 학부모들도 자극을 받을 수밖에. 도서관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어머니들의 모임 ‘자작나무’ 회원 11명은 다음 달 전국 시낭송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정년이 4년 남았다는 류 교장. 은퇴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아이들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것이다. 
“내 동화를 듣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작가가 되어서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전 초등학교 다닐 때 삐에로 분장으로 동화를 읽어주던 교장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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