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 붓질
삶의 행로가 바뀌는 순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인생의 ‘변곡점(變曲點)’. 어떤 이는 그 순간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아 잊혀졌던 ''오랜 꿈''을 되살려내고 그 꿈을 찾아 나선다. 꿈을 좇는 삶….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국화 분야에서 30년 이상 완숙한 필력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중인 명경자(70`분당구 구미동)씨. 그도 30대 중반 평범한 주부에서 화가로 거듭나는 ‘터닝 포인트’를 했고, 지금껏 꿈을 좇아 묵묵히 걷고 있다.
시작은 늦었지만 열정에선 언제나 선두
마주앉은 그는 사진보다 젊고 활기차 보였다. 인터뷰를 약속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한번 한 결정에 대해선 그런 거 없다”는 시원한 답변이 돌아온다. 서정적인 그림과 온화한 미소로 미루어 짐작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스스로를 ‘저돌적’이라고 함축할 만큼 말투는 경쾌하고 사고는 명료했다.
그에게 그림은 소통구였다.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아주 무료했어요. 나중에야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암 진단도 받았고요. 신경성이 심하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시작했어요.”
처음 동기생은 10명이 넘었다. 그러나 살림하랴 애들 키우랴 한두 명씩 떨어져나가고 창의력에 어려움을 느낀 몇 명이 또 그만뒀다. 뭐든 한번 하면 오래하는 성격 덕인지 10년을 넘기며 생존(?)했단다.
이후, 틈나는 대로 붓을 들었다. 10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북경과 일본, 프랑스를 오가며 초대전과 공동전시에 참여하였고 지금도 동호인들과 각종 정기전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출발은 늦었지만 열정으로는 언제나 선두를 지킨 셈이다.
안식과 평화 줄 수 있는 그림 그려야
외가에는 다재다능하던 이모가 계셨다. 그 재주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은 이모님 이름의 한 글자(卿(경))를 따서 딸 이름을 지었다. “재능은 있었던 거 같은데 규제가 심한 시대라 그저 조용히 지냈어요. 아버지도 엄하셨죠. 동경 유학시절에 ‘껄렁껄렁하게 돌아다니는 처자들을 많이 봤다’는 이유로 해 떨어지면 외출을 금지했으니까요. 탈출해야겠다고 맘먹고 기숙사가 있던 서울 농대로 무작정 진학했어요.(웃음)”
뒤늦게 터진 재능은 환갑 나이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만들 정도. “미술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장학금도 타보고 논문도 1등으로 제출했지요.(웃음) 하지만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어요. 낙태아를 비커에 담은 전시에 유치원생들을 관람케 하는 것은 충격적이었죠.”
그의 붓이 닿는 실경산수화는 잔잔하고 고즈넉하다. 인간 영혼의 참된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안식과 평안을 추구하기 때문. 워낙 좋아해 자주 등장하던 바닷가 전경대신 요즘은 꽃 그림을 주로 그린다. 나이가 들다보니 눈물 나는 쓸쓸함 대신 따뜻함을 전하고 싶어졌단다.
봉사하는 삶, 욕심내지 않는 평범한 진리 깨닫게 해
그는 동료 작가, 제자들과 함께 장애우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매월 두 번 씩 벌써 9년째. 불쌍하고 안됐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영적으로 행복함을 느낀다. “그림 그릴 때 저는 학습효과 같은 건 다 빼고 그냥 놀라고 해요. 나무를 눕혀 그리면 ‘나무가 넘어지니 엄청 재미있네’ 하고 반응하죠. 그러면 가지 사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기도 하면서 엉뚱하고 본능적으로 그려요. 대가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그린 듯한 작품을 접할 때면 깜짝 놀라지요.”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로 주저 없이 ‘신앙’을 꼽는 그녀는 요즘도 그림 그리랴 주일교사로 봉사하랴 젊은 엄마들 지도하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에게 젊게 사는 비결을 물었다.
“요즘 제 친구들을 만나면 ‘건강이 안 좋은데 뭐 먹어야 해?’ 이런 대화가 전부해요. 그럼 저는 참 답답함을 느껴요. 걱정한다고 변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사는 게 좋은 거 아닐까요?”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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