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을 시기라도 하듯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어느새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마냥 저만치 떨어져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아직도 낮 기온은 30도에 가까워 한낮에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야 하는데….
이런 때에 가볍게 산책도 하면서 자연도 느끼며 쉴 수 있는 시원한 휴식처가 있다 하여 찾아가 보았다. 바로 얼마 전 개봉한 박해일, 문채원 주연의 영화 ‘최종병기 활’의 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낯선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푸르른 피톤치드의 바다 죽림의 편백숲에 풍덩 빠져본다.
공기마을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전주역에서 남원방향으로 약 10km 정도 가다가 죽림온천 조금 못 미쳐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후 2km 정도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공기마을(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뒷 편에 자리 잡은 편백나무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이 숲은 올해로 35년 정도 자란 편백들이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펴며 해를 향해 웃음 짓는 곳이다.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찾는 이가 많아 차를 세워둘 마당이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올 여름엔 잘 정비해 둔 주차장(주차료 대당 2000원) 덕분에 이곳을 찾은 이들이 조금은 편안한 방문이 되었을 법하다.
숲은 공기마을 주민들이 지난 1976년 뒷산 86만㎡(26만평)에 1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이룩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30여 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른 덕분에 지금은 장성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듯 나무가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고 있다.
지그재그 오솔길, 도란도란 산책길
주차장에서 약 400m 정도 오르면 숲길이 시작되는데 그곳에는 둘이 나란히 걸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조금 넓게 닦여진 산책길과 숲속을 헤치고 들어가 일렬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오솔길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오늘의 탐방길은 울창한 나무사이로 오로지 편백의 뼈와 살들로 이루어진 오솔길이다.
잎과 나뭇가지가 쌓이고 썩어 이룬 오솔길은 아스팔트처럼 딱딱하지 않고 푹신한 느낌을 준다. 편백을 통으로 잘라 만든 다리 5개를 건너면 오솔길 완주가 끝나는데 제법 가파른 듯 하면서 편안한 편백숲의 지그재그 길은 남녀노소가 숲속의 기운을 받으며 걷기에 손색이 없다.
숲속을 들어서니 묘한 느낌이 든다. 뿌연 안개가 서린 듯한 땅위 공기는 뭔가 습한 기운을 내뿜는데 그것이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이다. 본디 피톤치드는 나무가 병충해나 나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출하는 일종의 분비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아토피 피부염에도 좋은 효과를 보인다.
도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죽림 편백숲
편백숲에서 산행도우미를 만났다. 이금자(52·인후동)씨와 최순희(47·인후동)씨는 몇 년 전 암과의 사투에서 싸워 이겨낸 아줌마들이다. 또 모기장을 들고 산을 오르는 70이 넘은 듯한 백발의 노부부도 보인다. 그들은 거침없이 편백의 천기가 가득하고 걷는 이들도 잠시 머물다 가는 삼림욕장에 둥지를 털었다. 아줌마들은 등산을 마친 뒤 쉼 없이 수다를 떨고, 노부부는 등산도 탐방도 아닌 그저 모기장 속에 들어가 좋은 공기를 마시며 소박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효자동에서 매일 이곳에 와요. 할아버지가 이곳 공기를 너무 좋아해 아침이면 천천히 산에 올랐다가 하루 종일 쉬고 놀며 낮잠도 자다가 저녁 6시면 집으로 간답니다. 젊어서는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돌아갈 나이되니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새록새록 정이 다시 붙는구먼.”
이곳에서는 유독 머리에 두건을 쓴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수술 후거나 항암 치료 중인 이들이다. 환우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이미 치유의 숲으로 정평이 나 있어 인근 도시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타 지역 사람들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된 지 오래다.
하산하는 길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곳이 있으니 바로 썩은 달걀냄새가 난다는 유황편백탕이다. 대중족욕탕처럼 길쭉한 탕 안에 발을 담그고 모두들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름이면 뜨거운 햇살을 직접 받지 않고 편백나무 사이로 풍부한 피톤치드에 취해 시원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가을 겨울에는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면서 편백숲의 가을풍경 및 설경 속 주인공이 되어도 좋을 이곳. 이렇게 아름다운 오솔길과 몸에 좋은 기운을 선사하는 편백숲이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편백숲을 찾는 이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던 그 마음의 ‘평온’을 오늘은 리포터가 맘껏 누려본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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