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의류 샘플디자이너 신필숙씨

“무엇이든 배워두면 꼭 쓰일 데가 있더군요”

퀼트 요리 컴퓨터 패션디자인…, 못하는 게 없는 ‘멀티 주부’

지역내일 2011-09-05

# 신필숙(51.신길동)씨에 대해서는 그냥 ''주부'' 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주부가 아니니까 말이다. 신씨는 퀼트강사 포크아트 강사를 거쳐 요리 제과제빵, 홈페이지 쇼핑몰제작, CAD를 배웠고, 요양보호사자격증, 숲 해설가 자격증, 양장기능사 자격증, 패션디자인산업기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으며 방송통신대 학생이기도 하다. 가히 ‘멀티 주부’라고 할까. 
“젊었을 때부터 배우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그림을 배웠고, 퀼트 포크아트도 좀 일찍 받아들였죠. 여성회관에서 제과제빵, 양재, 한복을 배우다가 남편 일을 돕기 위해 직업학교에서 CAD 공부를 했어요. 생각해보니 늘 뭔가 배우면서 살아왔네요.”


#요즘 하고 있는 일로 보자면 신 씨는 프리랜서 의류샘플디자이너다. 천의 재질과 무늬의 특성을 살려 그에 딱 어울리는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패션디자인을 하자면 스타일화를 그려야 하는데 예전에 그림 배운 게 도움이 됐어요. 퀼트나 포크아트도 의상에 접목할 수 있는 거고, 작품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릴 때는 컴퓨터 공부한 걸 써먹을 수 있죠. 저는 무엇이든 배워두면 쓰일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 지난해 양장기능사자격증과 패션디자인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신씨는 의상디자인을 더 배우기 위해 올해 방통대 가정학과에 입학했고, 방통대 모임에서 만난 선배를 통해 의류샘플디자인 일을 제안 받았다. 마침 선배가 다니는 회사에서 샘플 디자이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패션디자인 일은 창작이라 부단히 노력해야하고, 시행착오도 많아요. 작품을 만들어보면 생각 했던 대로 안 나올 때가 많죠. 동대문시장에도 자주 가서 트렌드를 파악하고, 디자인을 연구하고 바느질을 해야 해요.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한테 더 잘 맞는 일 같아요. 방통대 공부를 하다가도 기분전환 삼아 바느질을 하죠.”


#2008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시립노인병원에 취업해 일했다. 전신마비환자를 혼자 목욕시키는데 무척 힘들었지만 다 씻기고 나면 뿌듯했고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일이라 가족에게 피해주는 게 미안해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올해 초엔 친정어머니가 말기 암에 걸려 신씨가 집으로 모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한 달간 수발을 들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써먹을 데가 있을까 했는데 정말 잘 배워뒀다 생각했어요. 방통대 공부에서 말기암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도 배웠기 때문에 어머니가 곧 가시겠다는 것도 알고 임종 준비를 했죠. 고생을 많이 하신 엄마의 마지막을 제가 보살필 기회가 있었다는 게 감사했어요.”
정성을 다하면 통하는 걸까. 돌아가신지 얼마 뒤에 꿈에 친정어머니가 나타나 “너희 덕분에 이 길을 편안하게 왔다”고 하시더란다.  


# “배워봐야 쓸데도 없는 걸 왜 배우냐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제 경우엔 배운 것들이 쇠사슬처럼 서로 연결이 되어 지금을 이뤄왔죠. 전 나이가 들어도 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요.”
신필숙씨는 어떤 방면에 전문가가 되기보다 여러 가지를 잘 하고,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 예전에는 노후에 전원주택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겠다는 꿈도 있었다는 신씨. 어느 날 TV에서 한 신부님이 운영하는 ‘민들레 국수집’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됐단다.
요즘 신씨가 꿈꾸는 노후생활을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꿈이란 산동네에 살며 옷수선집을 하는 것. 돈 있다면 돈 받고 돈 없다고 하면 그냥 수선해주고…. 가끔은 동네에 고소한 빵 냄새를 피워가며 빵을 구워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에 이런 동화 같은 꿈을 가질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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